[유쾌한 약재 산책] 까칠한 껍질 속에 숨긴 가치, 율피

2024-10-24

깊어가는 가을, 어머니와 고향에 다녀왔다. 고향의 가을은 언제나처럼 풍요롭고 활기차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야생 밤은 야산을 아기처럼 굴러다녔다. 이틀 동안 동네 산을 헤집고 다니며 다람쥐같이 밤알을 모았다.

밤알은 단단하고 가시로 뒤덮인 겉껍질 속에 알알이 박혀 있고, 밤송이 하나에 세 톨의 밤알이 맺혀 삼정승을 뜻한다고 해 입신양명(立身揚名)을 기원하는 의미로 우리의 전통문화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까칠하고 기괴한 외관과 달리 밤은 매우 영양가 높고 깊은 맛을 자랑한다. 그래서인지 밤맛을 이용한 다양한 먹을거리가 시중에 판매되고 있다. 그러나 밤의 진정한 가치는 밤알에 있지 않다. 밤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밤의 속껍질 바로 율피다.

밤의 속살만큼이나 주목받지 못하지만 율피에는 사실 의외로 많은 효능이 담겨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밤의 속껍질인 율피(보늬) 추출물은 천연 항산화제인 비타민 C와 유사한 효과를 지니고 있으며, 풍부한 폴리페놀 성분이 피부 미백과 주름 완화에 효과적이다. 또한, 위장에서 ‘리파아제’라는 소화 효소를 분비토록 하여 당뇨와 혈당을 낮추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의보감>에서도 위암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내용이 언급된다. 이를 고려하면 율피를 그냥 버리는 것은 밤의 영양을 절반만 누리는 셈이다.

그런데 율피는 부패 속도가 매우 빨라 순식간에 상해버리는 단점이 있다. 그런 이유로 밤알을 활용한 식품은 많지만 속껍질을 활용한 식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에는 이를 보완해 율피를 이용한 차와 제품들이 출시되고 있기는 하다. 율피차를 집에서 만들기는 의외로 쉽다. 밤의 속껍질을 벗겨 그늘진 곳에서 1주일 정도 말린 후 한 줌씩 물에 넣어 살짝 끊이면 된다. 단 탄닌 성분 때문에 변비를 유발할 수 있으니, 변비 환자는 주의해야 한다.

까칠한 껍질 속에 숨겨진 건강의 비밀, 율피로 건강한 겨울을 준비해보자. 고향에 다녀오신 어머니는 매일 밤벌레처럼 밤을 파고 있다.

최미선 한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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