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본 스님의 세상 다시 보기] 노인들을 줄 세우지 마라 -자존감을 훼손하는 ‘한 끼 복지’를 넘어서

2025-11-27

밥을 먹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노인의 모습은 우리 사회복지의 실패를 보여주는 자화상이다. 가난보다 더 아픈 것은 배고픔이 아니라 그 줄 앞에서 무너지는 존엄이며, 상처는 대부분 하루의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서 있는 바로 그 ‘한 줄’에서 시작된다.

점심시간을 앞두고 무료 급식소 문이 열리기 전, 70~80대 어르신들이 좁은 골목에서 한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기다리는 모습은 익숙한 풍경이다. 허리가 휘어 지팡이에 기대거나, 어지러움을 참으며 벽을 붙잡은 어르신들 앞에서 “아직 시간이 안 됐습니다”, “일렬로 서세요”라는 말이 이어지고, 그 순간 그 줄은 단순한 대기가 아니라 존엄을 내려놓는 통로가 된다.

우리는 ‘무료 급식’이라는 이름 아래 어르신들에게 감사만 요구하고, 그 줄을 서는 행위를 은혜를 입는 과정처럼 만들어왔다. 그러나 그 줄은 단순한 식사의 대기가 아니라 자존심과 존엄이 침식되는 자리다.

무료 급식소와 경로식당은 복지의 최전선이지만,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밥을 주는 것”에만 집중해 “어떻게 대하는가”, “그 과정에서 존엄은 지켜지는가”라는 더 중요한 질문을 놓쳤다. “지금 오시면 안 됩니다”, “줄은 저 뒤쪽부터 서세요”라는 지시가 반복되고, 앞자리를 차지하려 조급해지거나 반찬이 떨어질까 걱정하는 어르신들은 도움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통제와 평가의 대상이 된다.

복지는 베푸는 자의 만족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존엄을 지키는 약속이어야 한다. 복지란 단순히 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밥을 먹는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잊지 않도록 돕는 일이며, 하루를 다시 살아낼 힘을 건네는 일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한 끼의 밥이 어르신들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미끼처럼 작동하고, “배고프면 이 줄에 서는 수밖에 없다”는 무언의 강요가 이어지고 있다. 배식 전에 자격을 묻고, 신분을 확인하며 “다음에 오세요”라고 돌려보내는 일은 지원이 아니라 상처의 경험이다.

그 어떤 선행도 줄 세우기와 함께한다면 이미 폭력이다. 잘 차려진 식탁이라도 감시와 통제가 있다면 감옥의 배식과 다르지 않다. 이제 우리는 ‘한 끼 복지’를 넘어 ‘한 사람 복지’로 나아가야 한다. 줄이 없고, 기다림이 아닌 환영이 있는 공간, 어르신들이 오고 머물고 싶은 존중의 밥상이 필요하다. 그래서 몇몇 지역에서는 테이블 서비스, 예약제, 상담·휴식이 가능한 공동체 라운지, 카페형 공간 등 존엄을 되돌리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제 그만하자. 과장된 선행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복지, “내가 도와줬다”는 만족을 위해 상대의 존엄을 깎아내리는 복지는 멈춰야 한다. 줄이 아니라 사람을 세우는 것이 복지다. 당신이 세운 그 한 줄의 끝에는 한 끼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서 있으며, 그 사람의 존엄은 우리가 반드시 다시 세워야 할 사회적 과제이다.

명본 스님 (사)울산그린트러스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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