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렸다’고 말하세요

2025-11-27

큰 실패를 겪고 여러 상황에 옥죄여 마음이 건강하지 않을 때, 우리는 세 가지 ‘나쁜 전략’을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굴복과 회피와 과잉보상입니다. 다른 전략들은 차차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그 중 굴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에 아무 저항 없이 ‘그게 모두 맞다’고 말하는 것이 굴복입니다. ‘나는 더이상 환영받지 못할 것이고 무능하며 내 세계는 아무 가치도 없어 허물어지는 것이 맞다’고 말하는 것이 굴복입니다. 2019년의 영국 연구에 따르면 이렇게 자기를 낮추어 보는 분들에게는 심리치료마저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자기 안에 힘이 없다 믿고, 변화의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그 와중에 주변 사람들과 치료자에게 미안해하느라 그 귀한 시간을 쓰기 때문입니다.

나에 대해 부정적인 주변 얘기

‘맞다’고 굴복하는 건 나쁜 전략

쓰레기로 나를 채우지 말아야

특히나 어린 시절부터 나의 결함만을 이야기하는 주변인들이 있었다면 굴복에 익숙할 수 있습니다. ‘네 선택과 노력의 방향은 틀렸다’고 말하던 사람들, 단 한 번도 나의 절망과 슬픔을 진실로 품어주지 못한 사람들, 함부로 내 세계에 침입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의 세계는 약해지고 희미해집니다. 내가 정말 어딘가 문제가 있고 결함이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이제는 누군가 지나가듯 하는 말, 그리고 심지어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말들까지 데려와서는 내 집 안에 앉힙니다. 이제는 잘못하지도 않은 모든 일이 나의 잘못 같습니다.

우울한 분들의 기억을 연구하는 방법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긍정적인 단어와 부정적인 단어를 얼마나 마음에 담아두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들의 결과를 집대성한 메타 분석 연구가 2022년과 2024년 연달아 발표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예상하신 대로입니다. 우울할수록 부정적인 말들을 자기 안에 들입니다. 더 오래 기억하고, 자신과 더욱 관련 있다 말합니다. 독특한 점은 긍정적 단어는 좀처럼 기억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아니, 왜요. 분명히 들었잖아요. 밝고 맑고 즐거운 이야기, 분명히 있었는데요. 뇌 안에 필터링이 작동해서 모질고 아픈 이야기만 기억하는 것입니다.

물론 세간의 부정적인 평을 아프게 곱씹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당황스러운 피드백들에 수치심도 죄책감도 느껴보며 내 행동의 레퍼토리를 바꿔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내게 의미 있는 사람이 보내온 피드백’ 한정입니다. 더욱 구체적으로는 ‘나의 장례식에 슬피 울 사람이 보내온 피드백’ 혹은 ‘경험 많은 그이의 말 만큼은 새겨듣는 게 낫다는 쪽’ 한정입니다. 그들이 고심 끝에 건네는 말은 뼈아프게 받아들이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참고만 하면 좋을’ 말들이며, 그 외의 침입적인 말들은 단호히 거부해야 합니다. 나의 장례식에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을 이들, 자신들의 인생이 불행하여 내 인생이라도 흔들어보려는 이들의 말이라면 굳이 내 세계로 끌고 들어오지 마세요. 쓰레기를 주워다 내 방을 꾸미지 마세요.

‘나는 더이상 사랑받기 어렵고, 손상되었고, 무력하며, 존재 가치가 없다’는 그 생각은 틀렸습니다. 스스로 지키고자 했던 세계가 사라지는 편이 낫겠다는 그 생각은 틀렸습니다. 자꾸 틀렸다고만 해서 죄송하지만 도대체가 맞는 말이 없어 저는 단 한마디에도 수긍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당신을 둘러싼 그 모든 비관적인 설명과 예측들에 굴복하기보다 ‘틀렸다’고 선언하기를 기다리려 합니다. 당신을 아끼는 사람들이라면 절대 동의하지 않을 그 틀린 말들에 이제 ‘틀렸다’고 말하세요. 나의 강점, 나의 노력, 나의 자질과 역사를 다시 기억해내세요. 매일 같이 정성을 다했고 다정하게 살폈던 당신의 세계는, 운 나쁜 실패나 남들의 말들로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저 담장 한쪽이 무너지며 요란한 소리가 난 것뿐입니다.

그 담장 안팎, 당신 모든 순간의 역사와 당신을 긍정하는 이야기들은 여전히 목을 빼고 당신을 기다립니다. 언젠가 당신이 달려와 무너진 세계를 살뜰히 보수하고는 밝고 맑고 즐거운 이야기들을 마음 안에 들여줄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이 잊으려 했던 그 이야기들은 몇달 혹은 몇 년이 걸려도 끝끝내 당신을 다시 만날 것을 알고 있습니다.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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