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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프값과 해상운임이 동반 하락하면서 2021년 이후 4년 연속 이어진 종잇값 인상행진이 멈출 지 여부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현재 관련업계에서는 연이은 가격 인상으로 경영난을 호소하는 인쇄 업계와 디지털 전환과 경기 침체로 지난해 부진한 실적을 거둔 제지 업계가 종잇값을 둘러싸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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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 남부산혼합활엽수펄프(SBHK) 가격은 톤당 665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785달러 대비 15.3% 하락했다. 공급 감소와 수요 증가가 맞물려 펄프값이 치솟았던 작년 7월 895달러와 비교하면 무려 34.6%나 떨어졌다. 지난해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펄프값이 하향 안정화한 데는 남미와 중국의 펄프 생산 시설의 증설로 공급이 늘어난 점, 중국의 경기 둔화로 글로벌 수요가 줄어든 점 등이 큰 영향을 미쳤다.
운송료도 우하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지난주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1759로 직전 주 대비 138포인트 하락했다. 5주 연속 하락세가 이어진 것이다. 지난해 평균 SCFI가 2506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평균과 비교해 29.9% 하락한 것이다. 2024년 1월 초 1897보다도 7.3% 떨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으킨 ‘관세 전쟁’이 해상 운임을 끌어내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종이 원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펄프값과 운송료가 동반 하락하면서 업계는 종잇값이 조정될 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인쇄용지 등 국내 종잇값은 2021년 이후 지난해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고 인상됐다. 펄프값과 해상운임 상승 등이 종이값 인상의 주요 이유였다. 인쇄업계의 한 관계자는 “제지업체는 원자재 가격 또는 환율 상승 등을 이유로 매년 가격을 일방적으로 인상통보하고 있다”며 “펄프값이 올라서 종이값을 올렸다면 반대로 내리면 종이값도 내려야 할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반면 제지사는 인위적인 종이값 조정은 현 단계에서 힘들다는 입장이다. 제지업체의 한 관계자는 “인쇄 업계에서는 종잇값을 수시로 올린다고 하는데 사실 종잇값은 가격 인상 요인이 발생하면 기준가에 적용되는 할인율이 축소돼 일시적으로 올랐다 다시 원래 가격으로 되돌아 오는 게 일반적”이라며 “예를 들어 100원 이라고 가정하면 재작년에 10% 올랐고, 지난해 10% 올랐다고 121원이 되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제지사의 영업이익 추이를 살펴보면 가격 인하 여력이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