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1년? 그러나 대단했던 존재감! 마이클 크레익

2025-01-06

KBL은 지난 2010년대 중후반에 외국 선수를 제한적으로 두 명 모두 뛰게 했다. 2~3쿼터에 한해 두 명 모두 출전하게 하면서, 또 다른 볼거리를 만들고자 했다.

마이클 크레익은 이 때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서울 삼성에서 한 시즌을 보냈다. 짧았으나 대단했던 존재감을 보여줬다..

대학 시절

미국에서 가드로 성장했던 크레익은 뚜렷하게 돋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에서 가드로 꾸준히 뛰는 것이 어려웠다. 볼 핸들링이 안정적이지 않았고, 기술적인 면이 많이 아쉬웠기 때문.

NCAA 1부 대학교로 진학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고향에 위치한 애리조나웨스턴대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1부에 속한 대학이 아니었기에, 자신을 알리기 쉽지 않았다. 가드로도 많이 뛰지 못했다. 대신 좀 더 많은 시간을 뛰면서, 자신의 기량을 갈고 닦을 수 있었다. 1학년인 지난 2009~2010시즌에 평균 9.7점 5.3리바운드 3.6어시스트 1.5스틸을 기록했다.

1년 후 사우스마운틴대학교로 전학했다. 전문대학 중심의 대학농구(NJCAA)에서도 2부에 속해 있던 학교라, 크레익이 좀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다만, 한 시즌 출장정지 처분을 감내해야 했다. 이에 힘입어, 평균 22.5점 9.3리바운드 7.3어시스트 3.3스틸을 기록했다. 팀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주간 평균 30점 14.5리바운드 9어시스트를 기록했던 때도 있었다.

자신감을 얻은 크레익은 NCAA에 도전장을 내밀기로 했다. 익히 알려진 학교는 아니었으나, 서던미시시피대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2012~2013시즌에 24경기를 나섰다. 경기당 19.7분을 뛰며, 평균 9점 5.1리바운드 2.2어시스트 1.5스틸을 기록했다. 돋보이는 활약은 아니었으나, NCAA 1부에 연착륙했다. 필드골 성공률도 58.3%로 나쁘지 않았다.

간혹 주전으로 포함됐고, 두 자리 득점을 기록한 경기도 꽤 많았다. UC어바인과의 경기에서는 시즌 개인 최다인 21점을 퍼붓기도 했다. 그러나 시즌 막판에 다리 부상으로 나머지 일정을 치르지 못했다. 좀 더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부상은 뼈아팠다.

하지만 적응을 마친 크레익은 자신의 입지를 굳혔다. 비록 NBA 진출과는 크게 멀어졌으나, 대학 무대에서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여줬기 때문.

33경기 중 24경기를 주전으로 뛰었고, 평균 24.4분 동안 11.1점 7.5리바운드 2.3어시스트 1.2스틸로 활약했다.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 크레익은 컨퍼런스USA 올-토너먼트팀에 선정되는 저력을 발휘했다. 서던미시시피 출신으로는 단 세 명 밖에 없는 기록. 그 정도로, 크레익의 활약은 돋보였다.

서울에서

크레익은 대학 졸업 후 여러 곳을 오가야 했다. 우선 NBA D-리그(현 NBA G-리그) 드래프트에 지원했다. 2015년에 열렸던 드래프트에서 전체 97순위로 리노 빅혼스의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D-리그에서도 뛸 기회를 얻기 쉽지 않았다. 당시 D-리그는 지금과 같은 NBA의 마이너리그가 아니었고, 많은 실력자가 두루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

크레익은 2016년 여름 한국으로 눈을 돌렸다. KBL이 2015~2016시즌부터 외국 선수 제도를 바꾸면서, 크레익이 KBL 무대를 노크할 수 있었다. 리카르도 라틀리프(현 라건아) 그리고 문태영(은퇴)과 함께, 전력의 틀을 다졌다.

국내 선수 구성도 나쁘지 않았다. 김태술(고양 소노 감독)과 김준일(현 울산 현대모비스), 임동섭(현 고양 소노) 등이 포진해, 삼성의 포지션 밸런스가 좋았다. 크레익이 마음 놓고 뛸 수 있는 환경이기도 했다.

크레익은 시즌 시작과 함께 힘을 냈다. 울산 모비스(현 울산 현대모비스)의 주전 센터인 찰스 로드를 밀어붙였고, 모비스전에서 19점을 기록했다. 훌륭한 신고식을 치렀다.

크레익은 안양 KGC인삼공사(현 안양 정관장)과의 경기에서도 맹공을 퍼부었다. 이날 무려 26점을 책임지며 팀의 승리에 크게 이바지했다. 2쿼터와 3쿼터에만 주로 뛰었음에도, 돋보이는 생산성을 자랑한 것. 또, 크레익이 시즌 초반부터 주축 파워포워드 역할을 잘 해내면서, 삼성도 치고 올라갈 동력을 마련했다.

크레익의 경기력은 11월에도 돋보였다. 더블더블을 신고하는가 하면, 서울 SK와의 경기에서는 3쿼터에만 17점을 몰아치는 기염을 토해냈다. 크레익이 집중력을 발휘하면서, 삼성도 경기를 뒤집을 수 있었다. 이어, 원주 동부(현 원주 DB)와의 경기에서도 23점을 몰아쳤다.

그러나 크레익도 상대에게 읽히기 시작했다. 시즌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오히려 공략의 대상이 됐다. 골밑 몸싸움은 강했으나, 공격을 시도할 때 동료를 살리지 못했기 때문. 본인의 공격을 우격다짐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게 컸다.

특히, 본인의 공격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본인의 공격을 좀 더 고집하는 경향이 짙었다. 이로 말미암아, 크레익은 시즌 초반 같은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삼성이 12월에 열렸던 원정 8연전에 나설 때, 시소 게임을 많이 했다. 이때 크레익의 집중력이 돋보였다. 성탄절에 열렸던 SK와의 경기에서 중요한 자유투를 성공했고, 월말에 열린 경기에서는 자신의 첫 트리플더블을 완성했다. 이어, 올스타전 덩크 컨테스트에서 외국 선수 부문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경기를 거듭할수록 자신의 공격을 계속 고집했다. 볼을 직접 모는 탓에, 속공을 비롯한 공격 전개 속도가 느렸다. 그리고 라틀리프와 함께할 때의 호흡이 결정적인 문제였다. 안쪽에 있는 라건아를 좀처럼 활용하지 않았다. 여러 문제점을 노출한 크레익은 팀에 큰 보탬이 되지 않았다.

삼성은 2016~2017시즌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지만, 크레익은 팀에 확실하게 녹아들지 못했다. 삼성도 크레익을 신뢰하지 못했다. 라틀리프가 경기당 38분 이상을 뛰어야 했다. 삼성은 KGC인삼공사와 5차전까지 2승 3패를 기록했다. 6차전을 접전으로 끌고 갔으나, 마지막을 버티지 못했다. 삼성은 선전하고도 우승의 기회를 아쉽게 붙잡지 못했다.

그렇지만 삼성은 크레익과 한 시즌 더 동행하고자 했다. 단, 조건이 존재했다. 크레익의 체중 관리였다. 하지만 크레익은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오히려 몸이 더 불었고, 삼성은 고심 끝에 크레익과 재계약을 맺지 않기로 했다. 크레익의 KBL 도전은 한 시즌 만에 마무리됐다.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갔다.

사진 제공 = KBL

바스켓코리아 / 이재승 기자 considerate2@basketkorea.com

[저작권자ⓒ 바스켓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