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오스트리아 비엔나대학은 다뉴브 강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실험실을 광섬유로 연결, 이 실험실들의 광자 상태가 서로 동시에 영향을 미치는 양자현상을 증명했다. 이는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양자현상이 실재로 존재한다는 것을 밝힌 중요한 사건이며 서로 떨어진 두 곳의 정보가 시간 지연 없이 동시에 공유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모든 우주현상을 설명하는 것으로 믿어져 왔던 뉴턴 역학이나 상대성 이론의 시공간 개념이 양자의 세계에는 적용되지 않음이 증명된 것이다.
양자역학이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시절,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문구로써 양자역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양자역학 정립에 큰 영향을 미친 과학자, 그 자신이 양자역학을 배척했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흥미롭다.
기존 물리원칙과 반대되는 새로운 양자이론이 정립돼 온 과정을 되돌아 보면 우리가 당면한 여러가지 과학적, 기술적 난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양자역학은 1800년대부터 원자와 분자에 대한 관찰과 관찰된 현상의 원인을 추론하고 정형화하는 단계를 거치면서 마주치는 모순을 논리적 추론을 통해 해결하고 그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는 여정을 거쳤다. 이러한 과학적 여정의 중심에는 항상 수학이 있었다. 다른 중요한 과학적 성취와 마찬가지로 양자역학의 정립도 수학이 없었으면 불가능하다.
수학은 과학적 사고의 전개를 위한 언어이며 문법이며 지능을 가진 다른 종과 인간을 구별하는 문명적 도구인 것이다. 국어, 영어 등의 언어처럼 수학도 수학적 개념을 기반으로 문제 현상을 논리적 체계(문법)로 표현해 주어진 현상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과학의 언어다. 아인슈타인도 알고 있었겠지만 주사위 놀이도 수학을 통하면 과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익히는 학습은 인지, 분석, 검증의 과정을 통해 형성되며, 인간은 이런 과정을 미지의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인해 지구상의 우월종으로 자리잡았다. 아울러 이와 같은 지식 습득 능력은 인공지능(AI)과 인간을 차별화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기도 하다.
미래의 AI 시대에 인간이 가져야 하는 핵심역량인 논리적 사고를 통한 문제해결 능력, 통찰을 통한 창의력, 수학적 의사소통을 통한 고차원적 사고력은 수학교육을 통해서 가장 효과적으로 습득될 수 있다. 따라서 수학교육의 목적 또한 이런 역량을 배양시키는 데 있어야 한다.
수학교육을 통해 모든 이가 양자역학자의 경지에 이를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과학 인재들에게 그러한 역량을 갖추도록 하기 위한 수학교육에는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28년도 대학입시부터 심화수학을 제외한다고 한다. 교육부는 이를 통해 사교육 과열 현상을 줄이고 수학 수업이 '미래 역량'을 기르는 방식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어려운 입시를 쉽게 만들면 사교육이 줄어들 것이라는 논리는 비록 교육과정 왜곡의 다양한 원인 중에 대학입시제도가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교육정책의 논리로는 매우 위험해 보인다.
학생들은 대학시험에도 나오지 않고 내신등급도 불리한 심화과목을 수강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기에 학교에서도 더욱 개설하지 않을 것이기에 우리나라 수학 수준의 하향평준화는 불 보듯 뻔한 결과다. 다른 한편으로 학생들은 쉬워진 수학 대신 국어와 논술에서 변별력을 갖추기 위해 더욱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접근은 사교육 과열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학에서도 학생선택권 강화의 명분으로 졸업이수에 필요한 학점 수와 전공 학점 수를 축소하고 있다. 고등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심화수학부터 전공에 필요한 고등수학까지 가르쳐야 하는 상황에 졸업이수 학점마저 줄어들면 깊이 있는 전공 교육은 더욱 설 자리가 없어진다.
결과적으로 줄어든 학점 수 덕택에 학생들은 어려운 수학이론이 필요한 전공과목은 수강하지 않아도 졸업이 가능하고 그렇게 마주한 산업 현장에서는 신입사원 기초 이론 교육을 다시 받고 있다.
쉬운 수학을 통해 만들어질 '미래역량'이 우리의 과학기술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으로 보여 심각하게 우려된다.
박영철 한국외국어대학교 반도체전자공학부 교수·한국전자파학회 수석부회장 ycpark@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