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캐릭터 ‘마을주민1’이 내 캐릭터를 사랑하게 됐다. 주민1은 마을 상점에서 반지와 꽃다발을 사서 선물하며 내 캐릭터에게 프러포즈했다. 하지만 거부 당하자, 갑자기 태도를 바꿔 스토커가 됐다. 주민1은 내 캐릭터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계속 퍼트렸고, 주변 다른 캐릭터들을 선동해 마을에서 쫓아내려 했다.
게임 속 NPC(Non Player Character·컴퓨터가 조종하는 캐릭터)는 지금껏 멍청함의 대명사였다. 정해진 대사만 반복하는게 전부였다. 하지만 크래프톤이 개발 중인 시뮬레이션 게임 ‘인조이(inZOI)’에선 위 시나리오와 같은 전개가 가능해진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인공지능(AI)을 적용한 NPC들이 본격 등장하기 때문이다.
AI 대중화로 게임 산업이 격변하고 있다. 업계에선 당장 올해가 진정한 ‘AI 게임 시대’ 원년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게임 제작 과정에 AI를 활용하는 것을 넘어, 올해부턴 게임 속에 AI를 더 적극적으로 도입할 전망이다. 한국 게임사들도 이런 흐름에 따라 다양한 AI 게임 출시를 예고하고 있다.
크래프톤이 오는 3월 출시 예정인 인조이에는 NPC 대신 CPC(Co-Playable Character)가 등장한다. 미리 정해진 답변과 반응만 할 수 있던 게임 속 캐릭터가 아니라 게임 이용자와 자유롭게 소통하고 주변을 인식하며 이를 바탕으로 하고 싶은 행동을 스스로 정해 실행에 옮기기도 하는, 실제 인간과 구분하기 힘든 AI NPC다.
이 캐릭터에 적용될 AI 기술은 엔비디아와 협업을 통해 개발했다. 이강욱 크래프톤 딥러닝본부장은 지난 8일(현지시간) ‘CES 2025’가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관련 내용을 공개하며 “CPC는 게임 특화 온디바이스 소형언어모델(SLM)을 기반으로 하는, 게임 이용자와 상호작용 할 수 있는 전혀 새로운 개념의 캐릭터다. 상황을 유연하게 파악해 대응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크래프톤이 공개한 인조이 시연 영상에선 AI 캐릭터(스마트 조이)가 길 잃은 캐릭터에게 먼저 다가가 가야 할 곳의 위치를 알려주거나, 춤을 추는 캐릭터를 발견하면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박수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침대에 누우면 그날 경험한 일들을 회상하고, 다음날 어떤 일들을 할지 스스로 고민해 계획표를 짠다. 이용자 캐릭터와의 대화나 함께 한 활동들이 차곡차곡 ‘기억’으로 쌓이면, 성격이 점차 변하거나 삶의 목표 자체가 바뀔 수 있다. 크래프톤 관계자는 “CPC가 더 발전하면, 멀티게임의 경우 같이 팀을 이뤄 대화하고 협동하며 상대팀을 무찌른 동료 캐릭터가 인간인지 AI인지를 게임이 끝날때까지 눈치챌 수 없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위메이드는 자회사 위메이드넥스트는 현재 개발 중인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미르5’를 통해 AI 기술을 적용한 보스 캐릭터 ‘아스테리온’을 선보일 예정이다. 역시 엔비디와와 협업했고, 머신 러닝을 적용한 AI 모델을 게임에 맞게 미세 조정하며 개발 중이다. 패턴에 따른 공략법만 익히면 비교적 쉽게 제압할 수 있었던 기존 게임 보스 캐릭터와 달리, 이용자 행동을 학습하고 그에 맞게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다. 같은 보스라도 매번 새 방식으로 전투가 이뤄지므로 이용자 역시 전략을 새로 세워야 하고, 이에 따라 플레이 경험은 무한하게 확장될 수 있다.
구체적 활용 방안이 나오진 않았지만, 넥슨과 엔씨소프트 등 다른 국내 게임사 역시 AI를 활용해 게임 내 콘텐트를 다채롭게 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넥슨은 이미 2017년 설립한 인텔리전스랩스의 연구 결과물을 게임 제작에 활용하고 있고 FPS(1인칭 슈팅게임)‘더 파이널스’ 내 음성도 AI로 제작했다. 2023년 AI 모델 ‘바르코(VARCO)’를 자체 개발한 엔씨소프트는 사내 AI 연구개발 담당 부서를 자회사로 분사시켜 ‘엔씨 AI’를 출범했다. 개발 중인 게임에 AI 캐릭터를 도입할 예정이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다른 모든 영역처럼, 게임 역시 AI를 통해 미지의 영역에 닿게 될 것”이라며 “제작 과정 혁신은 물론이고, 플레이 자체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변할것이다. 한국 게임도 이런 흐름을 잘 따라가야 계속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분석업체 마켓닷어스는 게임에 활용되는 생성 AI 관련 시장 규모가 지난해 11억3700만달러(약 1조6300억원)에서 2032년 71억500만달러(약 10조2000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더중앙플러스 : 팩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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