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상자산 시장이 부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미국 중소은행 부실대출 등으로 촉발된 신용위기 우려가 수그러들었지만 불안심리가 스테이블코인 등 가상자산으로 파급된 영향이다. 갈수록 몸집을 불리고 있는 스테이블코인의 위험성이 아직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만큼 향후 위기가 찾아올 경우 금융시장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아울러 가상자산과 전통적 금융권 간 연결이 가속화되고 있어 스테이블코인 규제가 촘촘하게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달 초 12만6000달러선을 넘기며 역대 최고가를 경신한 비트코인 가격은 최근 11만달러를 넘기지 못하고 있다. 가상자산 시장의 불안심리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과 각국 금융당국·중앙은행이 모인 금융안정위원회(FSB)는 금융안정 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발 ‘시스템 리스크’를 경고했다. 가상자산 시장이 큰 충격을 받거나 기존 단기 금융시장에서 유동성이 경색되는 등 유동성 위기가 발생할 경우 스테이블코인 ‘대량 환매(코인런)’ 사태로 이어져 기존 금융권으로 충격이 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테더, USDC 등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1코인이 1달러의 가치를 갖도록 설계된 가상자산이다. 발행사가 은행 예금, 단기 국채 등 ‘안전한’ 준비자산을 보유하도록 해 언제든 1코인을 1달러로 바꿔줄 수 있다는 신뢰를 주는 것이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의 준비자산이 안전자산이긴 하지만 투자자들이 안전자산도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구심을 갖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위기 시 투자자들이 ‘내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이 생길 경우 투자자들은 대거 환매에 나서면서 유동성 위기가 불거질 수 있다. 실제로 USDC 발행사인 서클이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당시 준비자산 중 8%를 이 은행에 예치했다는 이유만으로 USDC 가격이 0.88달러까지 떨어진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USDC 보유자들이 100억달러 규모의 환매를 요청하면서 단기 시장금리가 오르기도 했다.
스테이블코인과 가상자산 시장의 규모가 빠르게 커지고 만큼 단기 금융시장에 미치는 충격도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IMF는 최근 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의 성장이 지속될수록 시스템 리스크의 영향도 커질 수 있다”고 짚었다.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불신도 우려 요인으로 꼽힌다. 글로벌 결제업체 페이팔이 주도하는 스테이블코인 ‘PYUSD’는 최근 발행사 실수로 300조달러(약 43경원) 규모로 발행됐다가 20여분 만에 소각 처리됐다. 실수 때문이긴 하지만 전 세계에 유통 중인 달러(2조4000억달러)보다 훨씬 더 큰 금액이 민간기업에 의해 손쉽게 시장에 풀렸던 셈이다.
스테이블코인의 투명성이 높지 않은 만큼 준비자산 규제가 있다 해도 발행사가 수익률을 쫒아 위험자산에 투자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불신의 한 축이다.
국내 금융당국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시 국채, 예금 등 유동성이 높은 자산으로 준비자산을 100% 이상 보유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향후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발행돼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달러 스테이블코인과 직접 교환될 경우 ‘제2의 외환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경우 자본 유·출입 규제가 훼손되면서 외환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발 충격을 방지하기 위해선 적절한 규제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FSB는 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 준비자산의 규모와 구성, 전통 금융과의 연계성이 확대된 점을 감안할 때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며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규제 체계를 도입했거나 개발 중인 국가들은 유동성 리스크 관리, 환매, 준비자산 보관 등을 보완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