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이나 채소에 들어 있는 단단한 ‘씨’는 손질 과정에서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 씹기가 힘들기도 하고 건강에 해로울 것 같아서다. 간혹 씨까지 먹는 과일이나 야채가 있지만 먹어도 별 탈이 없기 때문일 뿐, 중요하게 여겨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보잘것없는 줄 알았던 씨에서 건강에 유용한 성분이 확인되기도 한다. 우리가 몰랐던 뜻밖의 효능을 가진 씨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고추씨=매운맛이 나는 고추는 매콤한 음식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채소다. 고추가 들어간 음식을 먹다 보면 순간적으로 치고 올라오는 강렬한 매운맛에 얼굴이 붉어지고 딸꾹질까지 나는 경우가 있다. 바로 고추씨를 씹었을 때다. 특히 매운 품종인 청양고추의 씨는 물을 마셔도 얼얼함이 가시지 않을 정도로 맵다.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이 고추의 과육보다 씨에 더 많아서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캡사이신은 지방산 산화를 촉진해 체지방을 분해한다. 고추가 다이어트 예방에 좋다고 알려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고추씨가 뇌의 기억세포를 활성화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대전대학교 이진석·손창규 교수 연구팀은 국제 학술지 ‘식품과 기능’을 통해 고추씨에 함유된 ‘루테올린’이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 세포의 신경독성을 억제하고 신경영양인자 분비를 촉진한다고 밝혔다. 연구팀 관계자는 “고추씨를 기억력 장애와 치매 예방 보조제로 활용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라고 설명했다. 다만 매운 고추씨를 지나치게 섭취하면 복통이나 설사, 위장 장애, 심장 박동 증가 등 증상이 나타날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대추씨=대추는 ‘한 알이 보약 한 첩과 맞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건강에 좋다. 간과 신장을 튼튼하게 하고 혈액순환을 개선하며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성분이 함유된 덕분이다. 대추가 한약이나 보양식인 삼계탕에 들어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햇볕에 말려 겉이 쪼글쪼글해진 대추는 몸에 좋은 성분이 더욱 풍부해진다.
말린 대추는 보통 통째로 활용되기도 하는데, 대추씨에는 철분·칼륨·마그네슘 등이 풍부해 건강에 좋다. 칼륨과 마그네슘은 신경을 이완시키고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작용을 한다. 신경이 예민하거나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증에 잠이 오지 않는다면, 씨를 빼지 않은 대추를 통째로 달여 차로 마시면 좋다. 또 대추씨에는 혈당을 조절하고 염증을 없애는 성분이 있어 대추차는 당뇨 예방과 통증 완화에도 도움이 된다. 다만 대추차는 따뜻한 성질을 지니고 있어서 열이 많은 사람에게는 좋지 않다.

◆참외씨=참외씨는 버리자니 아깝고, 먹자니 씨를 둘러싼 부분이 너무 달고 물컹해 꺼려지기도 한다. 그런데 변비로 답답할 땐 참외씨가 제격이다. 한국식품연구원에 따르면 참외씨에 풍부한 섬유소는 장운동을 촉진해 변비를 해소한다. 또 참외씨에 들어 있는 글로불린·스테아린산 등의 성분은 구강 염증을 완화해 입안을 청결하게 하고 입냄새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참외씨는 임산부에도 좋다. 참외에는 임산부에게 꼭 필요한 성분인 엽산이 풍부한데, 참외씨를 둘러싼 하얗고 흐물흐물한 부분인 ‘태좌’에 엽산이 더 많이 들어있어서다. 태좌에 함유된 엽산은 참외 과육 부분의 5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엽산이 부족하면 기형아가 태어날 확률이 높아지므로, 임신 중이라면 씨를 제거하지 않고 참외를 먹는 것을 추천한다. 다만 참외는 차가운 성질이 있어 많이 먹으면 설사를 할 수 있다. 평소 위가 약해 소화가 잘 안되는 사람이라면 참외를 너무 많이 먹거나 차게 먹는 것은 좋지 않다. 또 과육보다 수분이 더 많은 참외씨는 쉽게 변질될 수 있으므로 먹기 전에 상하지 않았는지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권나연 기자 kny0621@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