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숙경 작가 개인전…‘문화공간 양’ 10일까지
숨어 있지만 많은 이야기 있어
팬데믹 시기 산책때 ‘오감’ 열려
자연과의 내밀한 대화로 ‘물꼬’
이면의 이면까지 표현 ‘추상적’
시간 흐름 따라 변색·퇴색 유도
풍경에 이면·시간 더해 ‘사차원’
세상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보이는 모습과 보이지 않는 이면의 모습이 공존한다. 그 둘을 모두 볼 수 있을 때 존재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가능하다. 하지만 대개 한쪽 면으로 만족한다. 가려진 부분까지 탐구하기에는 밀려오는 삶의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다. 이면까지 파헤치려면 각고의 노력과 시간이 투여돼야 하는데,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건이 녹록치 않다.
물론 온전한 실체를 파헤치려는 남다른 열정이 충천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런데 간혹, 눈에 쌍심지를 켜지 않아도 부지불식간에 알아차리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감성의 촉이 예민한 이들이다.
문화공간 양에서 개인전을 진행하고 있는 장숙경 작가는 일상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풍경들에 오감을 열어둔다. 작정하지 않아도 일상에서 흘러가는 풍경들에서 가려진 이면의 모습을 문득문득 발견하게 된다. 그는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 부분, 그 안에도 수많은 디테일들이 숨어있고, 그래서 더욱 많은 이야기가 거기에 있다”는 입장이다.
예컨대 바다의 수면에 대한 입장이 그렇다. 물의 표면인 수면의 이면은 수면 아래 물속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지만, 그는 표면에 햇빛이 내려앉은 윤슬을 또 하나의 표면으로 인식한다. 그러면서 수면을 윤슬의 이면으로 상정한다. 수면 위가 윤슬이고 수면 아래가 물속이 되는 구조다. 이런 구조에서 수면은 표면과 층위, 시간이라는 세 가지의 개념이 공존하는 보다 확장된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 인식의 지평 확장이다.
오감의 촉이 지금처럼 예민하게 발동하게 된 계기는 있다. 코로나 19 팬데믹 시기에 사람들과의 접촉이 봉쇄됐을 때, 그는 오감이 최대치로 열리는 경험을 했다. 비결은 산책이었다. 사람간의 접촉이 봉쇄되자 불안했고, 고독감을 떨치기 위해 산책을 시작했다. 그런데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 걷기를 시작하자 무심히 흘려보내던 풍경들이 새롭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발걸음을 멈춰 세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자연과의 내밀한 대화에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시각은 물론이고 청각과 촉각까지 예민하게 반응해갔다.
그가 산책에서 만나는 풍경은 제주 풍경이다. 그는 6년 전인 2018년에 가족을 따라 대구에서 제주로 이주했다. 코로나 19로 촉발된 산책은 제주의 수려한 자연과 그곳에 깃든 수많은 생명체들의 때로는 치열하고, 때로는 유유자적한 삶의 궤적들을 만나는 계기가 됐다. 제주 풍경을 새롭게 감각하며 풍경이 작업의 핵심으로 새롭게 등장했다. 그의 작업 여정에선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다. “20년 정도 작업을 했지만 돌이켜보면 이런 작업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제야 제가 찾던 것이 무엇인지 막 보이는 거죠.”
이번 전시에는 평면 17점, 설치 1점을 선보이고 있다. 그가 제주 곳곳을 산책하며 만난 풍경들을 시각화 한 작품들이다. 무엇보다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풍경의 이면까지 담아냈다는 공통점으로 묶여있다.
이번 전시 제목은 ‘섬 안의 섬’. 제주도라는 섬과 그 섬에서 살아가는 섬 같은 사람들에 대한 은유다. ‘섬 안의 섬’이라고 하면 이중적인 고립과 폐쇄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오히려 감각의 확장을 경험했기에 ‘섬 안의 섬’이라는 표현은 그에게는 희망의 시와 다르지 않다.
전시작 ‘깊이를 알 수 없는’ 연작은 설치작품이다. 전시장인 제주 전통 가옥 천장 아래 높이로 화이트보드 칠판 같은 모양의 틀에 직사각형의 한지를 붙이고 흑연으로 약간의 거리를 두고 둥근 점들을 묘사했다. 이번 전시엔 5개의 틀을 겹치게 설치했다. 틀 2개를 겹친 작품에선 둥근 점의 배열을 정형화하진 않았다.
작가가 “‘깊이를 알 수 없는’ 연작은 제주 밤바다를 집어등으로 환하게 밝힌 고기잡이배들에 대한 표현”이라고 했다. 제주 밤바다의 집어등을 모티브로 한 작품은 시시각각 마주하는 제주의 자연현상들을 감각화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미술언어로 표현하겠다는 방향성에 대한 첫 주제였다.
“멀리서 밤바다를 보면 집어등을 켠 배들이 수평선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착시일 뿐이었어요. 실제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보면 배와 배 사이에는 엄연히 간격이 존재하니까요.”
‘깊이를 알 수 없는’ 연작에서 그가 서술하려는 핵심 개념은 ‘깊이감’이다. 밤바다에서 보는 집어등의 행렬이 수평처럼 보이지만 그 사이에는 거리가 존재하기 마련인데, 우리의 시각은 그 깊이를 놓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놓친 바로 그 이면에 집중한다. 그는 육지에서 바라보는 집어등의 행렬을 “납작한 깊이감”으로 이해하고, 시각 이면에 가려진 두꺼운 깊이감을 작품에서 최대한 풀어낸다. 깊이감은 원의 앞면뿐만 아니라 뒷면에도 흑연을 칠하는 방식으로 확보하고, 작품을 2개 이상 겹치는 방식으로도 표현한다. 또다른 작품인 ‘이면의 이면’ 연작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연작의 확장판이다. 앞면의 원에는 은박을, 뒷면엔 금박을 입혔다. 동전의 양면 같은 존재의 실존을 탐구한 작품이다.
제주 밤바다의 집어등의 행렬을 수평으로 나열한 점들로 표현하거나 존재의 양면성을 금박과 은박의 앞뒷면 배치로 표현하는 그의 작업들은 다분히 추상적이다. 애초의 의도가 이면에 가려진 풍경을 담아내겠다고 지향했고, 그것이 추상성으로 드러난 것이다.
‘풍경’ 연작에서는 절정의 추상성을 발견한다. 한지 위에 은박을 씌운 나무 판에 일(해), 월(달), 화(불), 수(물), 목(나무), 금(쇠), 토(흙)을 영어로 새겼다. SUN, MOON, FIRE, WATER … 등으로. 그가 “해, 달, 불, 물, 나무, 쇠, 흙은 모두 일상에서 만나는 풍경”이라고 했다. “풍경을 그리지 않고 풍경을 상상할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었어요. 달이라는 각인만 보고도 사람들은 각자 마음 속 달의 풍경을 떠올릴 수 있는 작품을 염두에 두었죠.”
또 다른 작품인 ‘이면의 바다’는 작업을 위해 한지 뒤에 깔아 놓았던 종이를 작품화한 연작이다. 한지 뒤를 받쳤던 종이 표면에 한지 작업의 자국이 스며들어 흔적으로 남았는데, 그 모습이 흡사 달의 이면처럼 다가와 구현했다. 자국이 촉발한 풍경은 은박을 만나면서 더욱 드라마틱해진다. 풍경 속에 은박을 흔적처럼 새기거나 풍경의 일부를 은박으로 가렸다.
“자전과 공전의 주기가 같아 지구에서 달은 앞면만 볼 수 있죠. 뒷면은 영원히 볼 수가 없는데, 한지 뒤에 깔렸던 종이가 달의 뒷면 같았어요.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달의 뒷면에 있을 바다를 상상했죠.”
공간의 깊이감을 포착하는 것과 동시에 또 하나 그가 주목한 것은 ‘시간성’이다. 그는 은박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시간성을 시각화한다. 시간의 흐름이 변색 또는 퇴색되는 은박의 특성을 활용하는 것이다. 시공간의 협공으로 삼차원의 풍경은 사차원의 입체적인 풍경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는 풍경의 양면을 전방위적으로 탐구하는데 작업의 방향성을 두고 있다.
하지만 궁극의 목표는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다. 풍경을 온전하게 감각하며 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제주의 풍경으로 첫발을 내 딛었지만 세상의 모든 풍경을 대상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이 가진 확장성은 무궁무진하다. 필요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기다림’이다.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순간적인 반짝임의 연속인 윤슬을 보기 위해선 가던 길을 멈추거나 시선을 고정해야 한다. 여기에 보이지 않는 이면을 향한 그의 예민한 감각이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전시는 7일 연장되어 10일까지.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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