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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공공분야 최대 정보화 프로젝트로 기대를 모은 국민건강보험공단 '디지털 대전환을 위한 통합징수 정보시스템 재구축 사업'이 다음달 최종 제안요청서(RFP) 공개를 앞두고 있다. 업계에선 벌써부터 불합리성 논란에 휩싸였다.
건보공단이 RFP에 앞서 내놓은 사전규격 기준이 입찰 참여를 준비중이던 정보기술(IT)업계에 부당한 요구나 조건을 다수 담고 있다는 것이다. 해당 사업을 따내려 뜨거워져야 할 시장이 오히려 얼어붙었다.
총 사업비 850억원 규모로 1분기 IT업계엔 보릿고개를 넘겨줄 동앗줄처럼 여져졌다. 하지만 사전규격을 받아든 IT업계는 곳곳에 담긴 독소조건에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가장 문제가되는 것은 과업범위가 명확하지 않을 뿐더러, 범위를 초과하는 책임을 사업자에게 떠넘긴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본 사업 개발로 인해 영향을 받는 타 시스템에 대한 수정은 사업범위에 포함해야 한다' 거나 '개별 요구사항에서 고려하지 못한 내용이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사항은 추가로 반영해 개발해야 한다'는 식이다.
오용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건보공단은 이번 사업에 혹여 참여하게될 특정 사업자에게 별도 발주 없이 다른 사업 시스템 개발까지 떠맡길 수 있다. 공단 업무 특성상 하나의 사업은 유관, 또는 후속 사업과 연계되거나 영향을 줄수 밖에 없다. 그러니 이번 개발 때 영향을 받는 시스템 수정작업까지 이번 사업범위로 둔다면 이는 명백히 '과업 과다책정'에 해당하는 것이다. 국가계약법 등 관련법령을 어기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대부분 공공 정보화프로젝트는 업체별 전문분야가 달라, 공동수급(공동이행방식)으로 참여하거나 따내는 방식이 비일비재하다. 그것이 IT개발의 효과 측면에서 더 높은 결과를 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건보공단은 이번 사업의 중요성은 충분히 알겠으나, 공동수급 대표사업자에 너무 무리한 책임을 지우려했다.
쏟아지는 IT업계 우려에 건보공단 측이 “현재 업계 의견을 받는 단계라 추후 자세히 살펴보겠다”며 공정한 입찰 진행 의지를 재확인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다음달 RFP 확정 고시전, IT업계 종사자나 납품 담당자로부터 직접 의견을 청취해 보길 바란다. 또 사전규격 내용을 고수하는 것이 기관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납품 업계의 상황에 맞게 책임감을 갖고 수정해가는 것이 더 권위를 얻는 길이란 점을 잊지 말길 바란다.
이진호 기자 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