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현우의 AI시대] 〈43〉AI발(發) '낙수 효과'가 필요하다

2025-11-20

요즘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가 뜨거운 화제다. 송명구 작가의 동명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배우 류승룡이 연기한 '김낙수'를 통해 대기업 25년차 중년 직장인의 치열한 일상과 세대적 고민을 생생하게 그린다.

필자 역시 과거 대기업에서 부장 직급을 맡았던 경험이 있고, 극 중 김낙수와 비슷한 연배인 까닭에 드라마 속 장면 하나하나가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직장과 가정 모두에 충실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젊은 시절 에너지를 회사에 '올인'했던 세대 특유의 정서가 작품 전반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직장인의 애환을 다뤘다는 점에서 2014년 방영된 드라마 '미생'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김부장 이야기'를 중년판 '미생'이라 부른다. 그러나 두 작품은 분명히 다르다. 미생이 '스펙'이 부족한 고졸 청년 장그래의 성장기를 그렸다면, 김부장 이야기는 서울 소재 주요 대학을 졸업하고 탁월한 영업 능력으로 승승장구했던 김부장이 결국 대기업에서 밀려나는 중년의 현실을 정면으로 다룬다.

그렇다면 김부장은 무엇이 부족해서 임원 승진에 실패하고, 사실상 권고사직에 가까운 명예퇴직을 맞게 되었을까? 많은 이들은 그가 '꼰대식 리더십'을 버리지 못한 관리자라고 지적한다. 이는 분명 일리가 있다. 그는 상급자인 백상무에게는 충성을 다하지만, 정작 팀원들의 강점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리더십의 기본이 부족한 인물이다. 상사 자녀의 졸업식에는 만사를 제쳐 놓고 참석하면서도 부하 직원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소통과 공감 능력이 부족한 인물이다.

하지만 필자의 눈에는 또 다른 측면이 보인다. 김부장은 문서 작성의 달인이지만, 극 중에서는 인공지능(AI)을 제대로 활용하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 또 김부장은 수십년의 내공으로 다져진 영업 스킬이 뛰어난 인물이지만, 고객을 만나거나 수주를 준비할 때 데이터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의 AI 활용은 음성인식으로 전화를 거는 수준이 전부다.

만약 국내 굴지의 통신 기업인 ACT가 김부장에게 실적만 압박하는 대신,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방식을 교육했다면 혹은 AI 도구를 활용한 AI 리터러시 프로그램을 제공했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김부장의 역량도, 실적도, 나아가 커리어의 방향마저 달라졌을 것이다.

문제는 은퇴 이후에도 이어진다. 장기간 쌓아온 영업 노하우와 현장 감각으로 판단했던 이른바 '감(感)으로만 일했던' 김부장은 은퇴자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상가 분양 사기에 휘말린다. 그에게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 습관화돼 있었다면, 단 한 번이라도 챗GPT 등 AI에게 상권 특성이나 상가 시세를 물어봤다면 이런 치명적 실수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국가가 전 국민이 쉽게 AI 도구에 접근할 수 있도록 '모두의 AI'를 보급하고, 전 연령을 아우르는 'AI 평생교육' 체계를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기업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 세대뿐 아니라, 모든 직장인에게 AI 리터러시와 데이터 기반 사고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생존 역량이 되었다.

전 국민이 AI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사회가 되면 무엇이 달라질까? 무엇보다 급격한 디지털화 과정에서 발생한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라는 부작용을 AI 시대에는 최소화할 수 있다. 이는 사회적 양극화를 완화하고, 취약 계층의 디지털 기본권을 보장하는 'AI 기본사회'의 필요성과도 맞닿아 있다.

더 중요한 점은 AI가 산업 간 융합을 통해 강력한 '낙수 효과(trickle-down effect)'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라는 사실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AI 대전환', 즉 AX(AI Transformation)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는 제조·유통·금융·헬스케어 등 모든 산업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며, 기존 산업의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한다. 또 기술과 인적 역량을 동시에 끌어올리기 때문에 새로운 일자리 창출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제 정부는 보다 적극적으로 AI발(發) '낙수 효과' 창출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그 기반에는 '모두의 AI' 보급, 'AI 평생교육', 전 국민의 'AI 리터러시 제고'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 교육의 차원을 넘어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힘을 국민 모두가 갖게 하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황보현우 서울대 산업공학과 객원교수 scotthwangbo@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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