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 촘촘히
캐릭터 맛집

tvN ‘태풍상사’가 호평의 중심에 선 이유 중 하나, IMF 시대상을 완벽하게 구현한 캐릭터 맛집에 있다. 김민석-권한솔-김지영-김영옥-박성연-권은성 등, 누구 하나 빠질 것 없이 서사를 촘촘히 채우고 있는 것.
tvN 토일드라마 ‘태풍상사’(연출 이나정·김동휘, 극본 장현, 기획 스튜디오드래곤, 제작 이매지너스·스튜디오 PIC·트리스튜디오)엔 IMF를 버텨낸 다양한 인물들이 있다. 청춘의 꿈과 좌절을 대표하는 왕남모(김민석)와 오미호(권한솔), 자식들을 위해 천금 같은 하루를 버텨내는 정정미(김지영)와 김을녀(박성연), 기억은 흐려져도 가족 사랑만큼은 선명한 염분이(김영옥), 그리고 속 깊은 아이 오범(권은성)까지. 현실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고 살아낸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극의 진정성과 공감대를 더욱 단단히 다졌다.
강태풍(이준호)과 함께 압구정을 누볐던 남모도 IMF를 피하지 못했다. 집안 형편이 급격히 기울자 엄마 을녀가 차린 호프집 일을 돕고, 이마저도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하자 투잡까지 병행했다. 태풍이 꽃이란 꿈을 접은 것처럼, 남모도 가수란 꿈을 내려놓았지만, “내가 여기서 쓰러지겠냐? 우리집 가장이니 열심히 살아야지”라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렇게 책임감과 성실함으로 하루를 채워가던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내는 데서 또 다른 삶의 이유를 발견했다. 그의 새로운 꿈은 바로 미호. 흔들리는 현실 속에서도 남모는 가족과 사랑이라는 두 가지 이유로 다시 일어서는 청춘의 얼굴을 보여주며 응원을 받고 있다.
미호는 IMF로 승무원 최종 합격이 취소돼 백화점 엘리베이터 안내원이 됐다. 진상 고객과 매니저의 잔소리를 견디면서 그녀가 놓지 않는 건 언니 오미선(김민하)의 대학 진학의 길을 다시 열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가장이 돼 학업을 포기한 언니에게 진 빚을 언젠가는 꼭 갚고 싶기 때문. 을녀가 아들과의 연애를 반대한 이유처럼, 집은 찢어지게 가난하고 부모도 없는 미호. 하지만 “가족이 세 명이나 있다”는 사실은 그녀가 내일을 단단하게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강남 주부에서 달동네 군식구가 된 정미는 손에 물 한방을 안 묻혀 봤을 것 같이 여려 보여도 누구보다 강한 엄마다. 아들 태풍의 짐을 나누고자 시작한 미싱 일은 남들보다 30분 먼저 출근해도 손에 반창고 뗄 날이 없을 만큼 서툴렀지만, 특유의 명랑함과 낙관으로 손끝에 기술을 익혀 이제는 어엿한 일꾼이 되었다. 또한, “아들 밥 하나는 절대 굶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매일 불고기 반찬에 푸짐한 저녁상을 차려낸다. 그러면서도 범이의 구멍 난 체육복을 손보고, 미호에게 아이 씻기는 법을 알려주며, 미선 가족 모두의 아침밥까지 챙긴다. 태풍을 키워낸 모정이 달동네까지 따스하게 채우고 있다.
염분이 할머니의 기억은 점점 흐릿해졌다. 그럼에도 가족을 아끼는 크나큰 사랑만큼은 단 한 번도 흐려지지 않았다. 지난 시절을 헤매다 가끔씩 정신이 또렷하게 돌아오는 순간마다 가장 먼저 챙기는 건 늘 손주들이었다. 겨울 솜이불을 꺼내 정성스레 바느질하는 그 손길엔 정신이 온전히 깨어 있지 않은 순간에도 변하지 않는 사랑이 가득했다. 소녀 같고, 새댁 같고, 때로는 한 많은 여인 같은 얼굴을 오가면서도 염분이는 그렇게 가족을 품었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힘겹게 아들을 홀로 키워낸 을녀. 32년 동안 근무한 은행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자 근속상 3년을 남긴 채 실직자가 됐다. 한겨울 복도로 책상과 함께 쫓겨났지만 퇴직서 한 장을 쉽게 내지 못했다. 당시 특히나 더 어려웠던 금융권의 시대상이 리얼하게 드러난 대목. 게다가 피라미드 다단계 사기를 당해 어렵게 마련한 호프집 문도 닫아야 했다. “가난은 문서 없는 연대 보증”이라는 두려움을 몸소 겪었기에 미호를 반대하는 모습은 더욱 가슴 저리게 처절했다. 그럼에도 실패와 상처를 딛고 백화점 청소를 하러 나가는 을녀는 현실의 단면을 드라마 속에 채워 넣고 있다.
오범은 시대의 혼란 속에서도 아이답게, 또 어른스럽게 하루를 살아내는 속 깊은 막내다. 누나들이 속상해할까 ‘녹색 어머니’ 통지서를 숨겼는데, 건널목에서 친구들의 등교를 돕는 미호를 보고는 “엄마보다 좋은 우리 누나”라고 자랑했다. 구구단과 씨름하며 팽이와 따조를 모으는 일상은 한파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지극히 평범해 되레 미소를 띄게 한다. 이 시대의 가족이 어떻게 서로를 붙들고 버텼는지를 가장 순수하게 보여주고 있는 존재다.
‘태풍상사’는 매주 토, 일 밤 9시 10분 tvN에서 방송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