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히 맞서 취향 펼치다

2025-08-16

양산이 돌아왔다.

그늘 한 점 없는 버스 정류장 앞에서 양산을 쓰고 있는 당당한 젊은 남자를 보았다. 그에 반해 나는 선글라스만으로는 제대로 눈을 뜰 수가 없었고, 살갗이 타들어가는 듯해 어디에서 버스를 기다려야 할지 난감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멀찍이 물러나 가까스로 그늘을 찾아 햇볕을 피하면서, 그 청년의 지혜와 당당함에 비해 양산을 준비하지 못한 내가 어설퍼 보였다. 이제 여름날 정오의 외출에는 선글라스 하나로는 부족할 것 같다.

양산. 나에게는 이름부터 구시대의 산물 같고, 패션과는 동떨어진 단어였다. 흰색 자수가 가장자리에 곱게 장식된 접이식 작은 양산은 어린 시절 엄마 핸드백에서 볼 수 있던 물건이었다. 그래서인지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양산을 쓰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햇볕을 무조건 피하려는 당당하지 못한 태도처럼 느껴졌다. 유럽 여행 중, 마스크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양산까지 쓴 사람들을 본 적 있다. 그들을 보며 “저럴 거면 여행은 왜 왔지?” 하며 혀를 끌끌 찼던 기억도 난다. 이렇게 나는 햇볕 아래에서 양산을 쓰는 행위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 생각은 올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버스를 기다려보기 전까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 햇볕과 당당히 맞서다가는 큰일 날 것 같은 날씨를 맞닥뜨렸다.

이렇게 양산은 젠더의 경계를 넘고, 연령의 기준을 깨며 실용성과 건강을 지키는 시대의 아이템이 되었다. 과거에는 ‘오버한다’거나 ‘할머니 아이템’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의식 있는 현대인의 선택으로 변화한 것이다. 타는 듯한 여름에 맞서는 가장 현실적인 보호 수단이자 전략적인 아이템이다.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양산’을 입력하자 수많은 상품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 이제 양산은 필수 아이템인 동시에 패셔너블한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게다가 ‘남자 양산’의 검색량도 상당한 것을 보면 대중화된 상품임이 분명하다. 가벼운 경량 양산에 차분한 컬러감부터 다양한 패턴이 있는 경쾌한 디자인, 자외선 차단 기능과 열감 차단 기능을 갖춘 기능성 소재까지 출시되어 있다.

양산의 기원은 태양을 가리고 신분을 드러내는 데서 시작되었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나 귀족 여성들이 양산 아래에 서 있고, 하인들이 그것을 들고 있는 벽화를 본 적 있을 것이다. 조선 시대에도 양산은 왕실 의례나 행차에 사용되었고, 양반 여성들 사이에서는 화려한 장신구처럼 여겨졌다. 20세기 산업화 이후, 양산은 신분의 상징에서 실용성과 치장을 겸한 생활 소품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값싸고 다양한 디자인의 우산과 양산이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고, 기능성과 심미성을 두루 갖춘 제품들이 시장에 빠르게 퍼졌다.

1980~1990년대 여름 거리에는 레이스 양산, 꽃무늬 양산, 자수가 놓인 우아한 양산이 유행처럼 번졌다. 어머니와 할머니 세대는 양산을 코디의 연장선으로 여겼고, 부채와 함께 들고 다니며 ‘여름의 단정한 교양’을 표현했다. 이 시기의 양산은 단지 햇볕을 막는 도구만이 아니라, 그늘 속에서 드러나는 섬세한 미의식의 일부였다.

신분 표현 수단서 젠더·연령 경계 깨고 실용·건강템으로

레이스·꽃무늬 옛말…가볍고 차분한 컬러에 열감 차단도

이러한 대중화의 배경에는 한국만의 산업적 기반이 있다. 당시 서울과 대구 일대에는 수많은 우산 공장이 있었고,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디자인의 양산을 생산할 수 있었다. 경공업이 발달한 덕분에 양산은 ‘특별한 사람의 전유물’에서 ‘누구나 들 수 있는 여름의 소품’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한국 사회 전반에 자리 잡은 ‘하얀 피부’에 대한 미의식 역시 양산 보급을 가속화했다. 햇볕을 피하는 것은 단지 더위를 막는 차원을 넘어 자기 관리와 단정함의 표현으로 여겨졌다. 양산은 햇볕 아래에서도 피부를 지켜내는 ‘예의’이자 ‘여성다움’의 상징이었다.

반면 유럽에서는 1950~1960년대 이후 전혀 다른 문화가 자리 잡았다. 부유한 상류층이나 중산층은 여름마다 바캉스를 떠났고, 햇볕에 그을린 피부는 ‘휴가를 즐길 수 있는 여유’의 상징이 되었다. 피부를 까맣게 태우는 것이 오히려 자유와 부를 상징하는 문화가 되면서, 양산을 쓰거나 피부를 가리는 행위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게다가 유럽은 지금도 우산이나 양산의 수작업 공정이 많고, 인건비도 높아 제품 가격 자체가 상당히 비싼 편이다. 양산이 문화적으로나 실용적으로 대중화되지 못한 이유는 기후보다는 문화와 경제의 영향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중국산 저가 제품이 대량 유입되면서 국내 우산 산업은 빠르게 붕괴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업체는 자체 브랜드 없이 유통 브랜드에 납품하거나, 로고만 바꿔 붙이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에 머물렀으며, 소비자 역시 우산을 ‘고장 나면 다시 사는 소모품’ 정도로 인식하게 되었다.

한편 일본은 한국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양산 문화를 발전시켰다. 일본 역시 기후적으로 자외선 차단이 필요했지만, 한국처럼 값싼 대량 생산보다는 초경량, 방풍, UV 코팅 등 기술 기반의 차별화 전략을 취했다. 다양한 디자인을 갖춘 소형 브랜드들이 성장했고, 좋은 물건을 오래 쓰는 정서와 맞물려 양산은 여전히 실용성과 감성을 겸비한 생활 아이템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기능성과 디자인이 결합한 일본의 양산은 적절한 가격대로 소비자에게 선택받고 있다.

이처럼 양산이라는 같은 물건이라 하더라도, 각 나라의 문화적 태도와 산업 기반, 미의식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온 역사가 있다. 같은 햇볕 아래에서도 그늘을 대하는 방식은 저마다 달랐다. 그리고 그 차이가 오늘날 양산을 대하는 각 사회의 태도를 결정짓고 있다.

지금은 유럽도, 미국도, 한국도 예외 없이 섭씨 38도를 웃도는 폭염과 이상기온 아래에서 여름을 견뎌야 하는 시대다. 실제로 유럽과 미국에서도 여름철 양산 사용을 권장하는 기사와 캠페인이 등장하고 있을 정도로, 양산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아이템이 되고 있다.

중국산 저가 양산과 기능과 디자인을 갖춘 합리적인 일본산 브랜드가 시장을 채우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에 다시 우산을 전문으로 하는 자체 브랜드가 등장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180년의 전통을 지닌 영국의 제임스 스미스 앤드 선즈(James Smith & Sons)처럼, 시간을 견디며 살아남는 우산 브랜드가 앞으로 이곳에서도 탄생할 수 있을까? 그 역시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한동안 패션 브랜드에서도 자취를 감췄던 양산이라는 아이템이 이제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것. 그것은 단지 햇볕을 막는 물건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도구이자 내 감각을 드러내는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 곁에 돌아오고 있다.

▲박민지 패션 디자이너

패션 디자이너. 파리에서 공부하고 대기업 패션 브랜드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20여년간 일했다. 패션 작가와 유튜버 ‘르쁠라’로 활동 중이다. 최근 세 번째 저서 <세계 유명 패션 디자이너 50인>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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