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 대한민국 양육자에게 이곳은 행정 구역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오후 10시 대치동의 인도는 학원을 마친 아이들로, 도로는 아이를 데리러 온 양육자의 차량으로 가득 찹니다. 이 풍경은 ‘사교육 1번지’ 대치동의 교육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죠. 대치동은 자녀를 명문대로 이끌어줄 최고의 학군지로 선망받는 한편, 아무나 함부로 넘볼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로 여겨집니다. 치열한 경쟁과 막대한 교육비, 무엇보다 천정부지로 오른 집값 때문이죠. 선망이든, 비판이든, 대치동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고 무엇을 배우는지는 늘 관심의 대상입니다.
6년 전 바로 그 대치동으로 뛰어든 워킹맘이 있습니다. 대치동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다 보니, 그의 노하우를 궁금해하는 사람도 늘었죠. 강남 3구 학군·학원 컨설턴트인 윤미리 인사이드대치 대표입니다. 헬로페어런츠(hello! Parents)는 앞으로 6회에 걸쳐 윤 대표와 함께 ‘대치동으로 이사 왔습니다’를 연재합니다. 첫 회는 워킹맘이 ‘생존’을 위해 대치동 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와 준비 과정을 들려드립니다.

Intro.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
Part1. 대치동으로 갈 결심
Part2. 맨땅에서 ‘대치동 자가’까지
Part3. 이사 전 ‘레테’ 예약부터
🚗대치동으로 갈 결심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삼호가든 사거리 치킨집에서 아이에게 저녁을 먹이던 중, 내가 비장하게 말했다. 매미 소리가 귓전을 울리던 2019년 여름방학의 끝자락이었다. 치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던 아이는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엄마, 꼭 이사 가야 해? 지금처럼 엄마 차 타고 학원 다니면 안 돼?”
나는 대답 대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 5학년 첫째의 방학특강 스케줄을 쫓아다니느라 몸과 마음이 완전히 소진된 상태였다. 일을 하다가도 끼니때가 되면 아이 밥을 먹이러 반포 학원가로 향했고, 그사이 둘째는 친정엄마의 손에 맡겨졌다. 남편은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아이를 픽업하느라 매일 숨 가쁜 퇴근을 했다. 한 아이 스케줄에 집안 어른이 셋이나 동원되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둘째까지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면 나는 얼마나 긴 시간을 길에서 허비해야 할까?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건 일·살림·육아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아이 식사마저 치킨 한 조각으로 때우고 있다는 죄책감이었다. 매일 임시방편처럼 흐르는 하루를 멈추려면 결론은 하나였다.
‘대치동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첫째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됐을 때부터 서울 용산 이촌동에서 반포 학원가로 라이딩을 시작했다. 교육에 대한 욕심보다 워킹맘으로서 생존을 위한 절박함이 앞선 선택이었다. 내가 일을 하려면 아이는 학원에 가야 했고, 그러려면 이촌동보다 학원이 많은 반포가 가장 가까운 대안이었다.
다만 그 선택이 내 삶을 이렇게 갉아먹을 줄은 몰랐다. 주 2~3회 라이딩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던 걸까. 어느새 나는 길 위에서 녹초가 되어가고 있었다. 늦은 밤 욱신거리는 어깨를 주무르며 잠자리에 누우면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일과 아이 교육, 둘 다 잡는 건 욕심인가?’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그런 밤을 무수히 보내고 얻은 결론이 대치동 이사였다. 대한민국에서 학원이 가장 많은 동네. 그곳에 산다면 내가 굳이 라이딩을 하지 않아도 아이는 혼자 학원을 다닐 것이다. 물론 대치동이라는 이름에서 오는 살벌함이 두렵기도 했지만, 선택의 결과는 7~8년 뒤 대입으로 드러날 문제였다. 우선 피폐해진 일상부터 멈추고 싶었다.

겨울방학 이사를 목표로 조용히 준비를 시작한 나는 2학기가 끝날 무렵 학부모 모임에서 넌지시 이별의 말을 건넸다.
“저희 겨울방학에 대치동으로 이사 가요. 이촌동에서 만나는 건 이번이 마지막….”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맞은 편 엄마가 눈을 크게 뜨고 소리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