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중순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등 동남아 3개국 순방에 나섰을 때다. 싱가포르의 온라인 칼럼 플랫폼인 ‘크리티컬 스펙테이터(Critical Spectator)’에 이 플랫폼을 만든 마이클 페트라우스의 글이 올랐다. 칼럼은 시진핑 비판에 초점을 맞췄다. 시 주석이 지난 12년간 갱단의 우두머리 같은 처신을 하지 않았다면 중국은 오늘날 세계에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되었을 것이란 주장이다.
그는 중국이 남중국해에 그은 구단선으로 아세안 국가들을 위협하더니 인제 와서 함께 힘을 모아 (미국에) 대항하자는 게 말이 되냐고 꼬집었다. 시 주석을 영화 대부(代父)에 나오는 마피아 두목 돈 콜레오네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가 폴란드 국적임을 고려하면 한 서방 논객의 시각이려니 했을 법하다. 한데 사흘 뒤 싱가포르의 저명인사 호칭(何晶)이 이 글을 페이스북에 공유하며 문제가 커졌다.

호칭이 누구인가. 오늘의 싱가포르를 일군 리콴유의 맏며느리다. 리셴룽 전 총리의 부인으로 2007년에는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세 번째 여성에 선정되기도 했다. 1953년생으로 미 스탠퍼드대학 석사 출신인 호칭은 2004년부터 17년 넘게 싱가포르의 국부펀드 테마섹의 최고 경영자로 근무했으며 현재는 테마섹 트러스트의 주석으로 있다. 아직도 싱가포르의 실력자라는 이야기다.
호칭은 또 중국 칭화대학 경제관리학원 고문위원회 4명의 명예위원 중 한 명이다. 칭화대 경제관리학원은 주룽지 전 중국 총리가 만들어 초대 원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한때 시진핑의 오른팔이었던 왕치산 전 국가부주석이 명예주석을 맡은 곳이다. 이는 호칭이 주룽지나 왕치산 등 중국 거물 정치인과의 관계가 간단치 않음을 시사한다. 즉 중국 정가 소식에도 밝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런 호칭이 시진핑을 비판하는 칼럼을 페이스북에 공유했다는 게 무얼 뜻하느냐가 중화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호칭은 소셜미디어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것으로 유명하긴 하다. 하루에 200개 이상의 게시물을 올린 적도 있지만 이번처럼 시진핑 비판 칼럼을 공유하는 건 매우 신중을 요하는 일이다. 한데 문제의 칼럼을 바로 내리지 않고 며칠씩이나 뒀다는 게 온갖 추측을 낳고 있다.
중화권에서는 시진핑 주석의 힘이 예전만 못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는 거다. 시 주석은 지난해 여름부터 군부와 갈등을 빚고 있는 거로 알려진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