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정’ 제주가 새로운 마약 밀반입 루트로 떠오르고 있다. 필로폰과 대마는 물론 ‘대마 젤리’ 등 신종 마약까지 유통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무비자 입국이 재개됨에 따라 전에 없던 대규모 마약 적발 사례가 늘어나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5일 경찰 등에 따르면 제주세관은 지난달 28일 캄보디아에서 출발 상하이를 경유해 제주공항으로 입국한 말레이시아 국적의 A(43)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혐의로 검거해 조사하고 있다. A씨의 가방에선 필로폰 2㎏이 발견됐다. 약 7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으로, 시가 70억 원 상당에 달한다고 한다.
A씨는 특수 제작한 과자 봉지에 필로폰을 나눠 숨긴 것으로 조사됐다. 가방뿐만 아니라 신발 깔창이나 외투 주머니 등 여러 곳에 숨기는 이른바 ‘백화점식’ 수법을 쓴 것으로 조사됐다. 제주세관 관계자는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과거 제주는 육지와 떨어져 있어 유통 과정이 번거롭고, 항공 노선이 제한돼 마약 유통이 어려운 지역으로 평가 받았다. 그러나 지난 2019년 6월 제주공항에서 처음 대량의 마약이 적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출발해 홍콩을 경유해서 제주에 도착한 남아공 국적 B씨는 대마초 약 20㎏을 가방에 숨겨 입국하려다가 적발됐다.
이어 2023년 10월엔 말레이시아인 마약 밀수범이 필로폰 12㎏을 밀반입하려다 적발됐고, 같은 해 11월 인도네시아 국적자도 필로폰 2㎏을 반입하려다 검거됐다. 이 외에도 쿠키·시럽·액상 등 각종 대마류 밀반입 시도도 늘었다는 게 세관 측 설명이다.


세관 관계자는 “마약 조직이 제주공항으로 우회 반입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 이후 대규모 반입 시도가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 배경에는 무비자 제도가 지목됐다. 제주도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 활성화를 위해 지난 2002년부터 무비자 입국을 허용했다. 2020년 2월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무비자 입국을 중단했다가, 2년 뒤 재개했다. 무비자 정책은 원칙적으로 제주에 머물도록 제한하고 있지만, 국내 항공편이나 해상을 통해 육지로 몰래 넘어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제주나 강원, 김해 등 지방공항은 인천공항보다 보안이 상대적으로 느슨하다는 인식이 있어 우회 경로로 이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렇게 제주에 들어온 마약이 국내선을 통해 본토로 들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제주공항 국내선은 마약을 검사하는 마약탐지기(이온시스템)가 없어 사실상 무방비 상태다. 마약 의심사례도 늘고 있지만 제주세관은 마약을 전문적으로 하는 수사팀조차 없는 상황이다. 다른 세관 관계자는 “검사하는 인원이 부족해 관련 해당과가 아닌 인력까지 총동원해 24시간 당직 근무를 서며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며 “마약탐지 장비뿐만 아니라 숙련된 노하우를 가진 인력 충원이 필수적”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마약 유통경로가 다변화함에 따라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최근 마약 유통경로가 인천공항뿐만 아니라 지방 공항으로 분산되며 제주를 포함한 지방공항이 주요 경로로 자리 잡고 있다”며 “무비자 입국자의 철저한 관리와 보안 강화는 물론, 세관 및 단속 인력 확충을 통한 전담팀 신설 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