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정부 시위대를 유혈진압 하며 수많은 시민을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셰이크 하시나 전 방글라데시 총리가 시위대를 향한 발포 명령을 직접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BBC는 9일(현지시간) 방글라데시 검찰이 하시나 전 총리가 고위 정부 관계자와 통화한 녹음 파일을 확보해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 녹취에는 군에 시위대를 상대로 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면서 “(시위대를) 어디에서 발견하든 발포하라”고 지시한 하시나 전 총리의 음성이 담겼다.
한 소식통은 이 대화가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해 7월18일 녹음됐으며 통화 당시 하시나 전 총리는 수도 다카의 관저에 있었다고 전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다카 전역의 경찰에게는 군용 소총이 배급됐다.
이 녹취는 하시나 전 총리가 시위대 사살을 군경에 직접 지시한 정황이 담긴 중요한 증거라고 BBC는 전했다. 통화 상대가 알려지지 않은 이 녹음 파일은 지난 3월 온라인에 먼저 유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시나 전 총리는 반인륜 범죄, 대량학살 선동 등 혐의로 국제범죄재판소(ICT)에 기소됐다. ICT는 대량학살 범죄 사건을 다루기 위해 방글라데시가 만든 별도 사법 기관이다.
유혈진압 당시 집권당이었던 아와미연맹(AL)은 하시나 전 총리의 시위대 무력 진압 지시 의혹을 부인했다. AL 대변인은 “당시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내린 결정은 정당했고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며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려 했다”고 해명했다.

지난해 7월16일 방글라데시에선 독립유공자 자녀를 위한 정부 일자리 할당제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일어났다. 경찰의 과잉진압 문제가 불거지자 이 시위는 15년간 집권하며 독재한 하시나 전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 항쟁으로 규모가 커졌다.
시위가 5주간 이어진 동안 군·경은 시민들을 향해 실탄, 고무탄, 최루탄 등을 쐈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방글라데시 정부의 유혈진압으로 140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했다. 희생자 중 80%는 군경의 총에 맞아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시나 총리는 무력 진압 주동 책임을 지라는 여론의 압박을 받자 지난해 8월5일 사의를 표함과 동시에 인도로 도피했다. 방글라데시 수사당국은 인도 정부에 하시나 전 총리의 송환을 요구했지만 이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시위대 폭력 진압과 관련해 정부 관리와 경찰 등 총 203명이 기소된 상태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경제학자인 무함마드 유누스 박사를 수반으로 한 과도정부를 꾸린 방글라데시는 내년 4월 총선을 치르고 새 지도자를 선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