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 떠나는 미국, 전문가 분석
나토 본부는 외관부터 독특하다. 168m 길이의 건물 8개가 76m 길이의 건물 4개와 서로 엇갈려 연결돼 하나의 단지를 이룬다. 나토의 21세기 중점인 통일과 통합을 보여주는 깍지 낀 손가락을 상징한다. 정원에는 베를린 장벽, 9·11 테러로 붕괴된 뉴욕 쌍둥이 빌딩 잔해가 전시되어 있다. 나토 임무의 첫 역사상 전환점과 나토 조약 5조가 처음 발동된 현장을 보여준다.
나토는 “하나는 모두를 위하여, 모두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삼총사』의 모토를 신봉한다. 그 정신이 담긴 게 나토 조약 5조로, 한 회원국에 대한 공격을 모든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련의 팽창을 견제하고자 유럽 국가들 요청으로 미국이 많은 부담을 지는 구조로 창설됐다. 나토 회원국은 지금도 미국과 여타 국가라고 말한다. 미국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나토, 미국이 많은 부담 지는 구조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당시에도 나토 조약 5조를 이행할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을 주저하였다. 취임 전부터 나토는 이미 쓸모없는 조직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으로서 나토가 쓸모없는 조직이 아니라고 확인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참석한 2017년 나토 정상회의는 “왔노라, 보았노라, 훈계하였노라”고 평가되었다.
나토 회원국들은 2018년에는 불확실성을 줄이고자 정상회의 결과로 발표할 사항을 미리 확정해 두었다. 그러나 충분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조지아와의 확대정상회의에 1시간쯤 늦게 나와 의제를 무시하고 “당신, 앙겔라” 등으로 각 정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방위비 규모를 확인하고 2019년 1월까지 GDP 2%로 올리지 못하면 미국은 홀로 가겠다고 위협하였다.
2024년까지 각 회원국 방위비를 GDP의 2%로 증대하기로 한 2014년 웨일스 나토 정상회의의 합의는 구속력이 없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회원국에 멍에가 되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을 계기로 나토 회원국의 방위비가 급증하면서 합의를 이행하는 회원국이 대폭 증가하였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GDP 5%로 방위비 증대를 요구한다.
나토는 1949년 창설 이후 많은 위기를 극복해왔지만 지금 같이 중대한 위기는 처음이다. 1989년 냉전 종언으로 존립 필요성에 의문이 제기되었지만 나토는 협력안보기구로 탈바꿈하여 구(舊)적대국과 대화를 증진하며 유럽 변경의 분쟁을 관리하였다. 나토 조약 5조는 2011년 9·11 테러 당시 처음 적용되어 미국을 지원하였다. 만일 미국이 탈퇴해도 나토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의 집단방위 공약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부르며 덴마크의 자치령인 그린란드 합병을 위해 군사력 사용을 배제하지 않는다. 나토 회원국을 침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규탄 유엔 결의안 채택 시에도 미국은 나토 회원국 대신 러시아와 함께하였다. 돈을 내지 않는 나토 회원국은 지켜주지 않겠다고 하였다. 나토가 표방하는 공통 위협 인식과 공동 대응이 아니다. 나토 건물이 상징하는 통일과 통합은 없다.
유럽 국가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을 대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대책을 강구했지만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매트릭스 영화 광고와 같은 심정이다. 트럼프 1기 당시인 2019년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나토가 뇌사 상태에 있다고 말하고 최근 독일 총리로 예정된 메르츠가 나토가 현 상태로 6월까지 존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 것은 솔직한 심정이다.
미국에서는 민간 메신저앱 ‘시그널’의 단톡방을 통해 예멘 반군 후티 공격 계획이 누설된 것이 논란이다. 유럽은 보도에서 드러난 트럼프 행정부의 반유럽 정서에 실망한다. 밴스 부통령은 수에즈 운하 해상로가 보호될 경우 이득을 얻는 것은 유럽인데 유럽을 구제하는 것이 싫다고 말했다.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유럽의 방위 무임승차는 애처롭다고 추임새를 넣었다.
지난해 바이든 대통령은 나토 창설 75주년 기념 정상회의를 나토 조약이 서명된 워싱턴에서 개최하면서 세계 역사상 유일한 가장 위대하며 가장 효과적인 방위 동맹이라며 나토를 평가하였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강조해온 “미국이 돌아왔다, 동맹이 돌아왔다, 외교가 돌아왔다”는 메시지의 정점과 같았다. 이제는 “트럼프가 돌아왔다”. 바이든 지우기는 그칠 줄 모른다.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마련하였다는 ‘임시 국가방어 전략지침’이 주목을 받는다. 미국은 중국의 대만 침공 저지, 미 본토 방어에 초점을 두며 동맹국들이 러시아·북한·이란 등 위협 억제에서 대부분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중국과의 잠재적인 전쟁에 대비하며 승리하도록 준비한다는 건 트럼프 1기부터 바이든 행정부를 거쳐 계속되어 온 정책이다.
대만엔 GDP 10%로 방위비 증대 요구

지침은 유럽이 방위비 분담을 증대하여 나토가 러시아의 침략을 저지하고 저지가 실패할 경우 러시아를 격퇴할 수 있도록 하며 미국은 여타 지역에서의 주요한 분쟁을 억제한다고 한다. 지침은 미국의 나토 탈퇴를 거론하기보다 미국의 우선순위를 열거하며 유럽과의 역할 분담을 제시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만에 대해서는 GDP 10%로 방위비 증대를 요구하고 있다.
지침은 미군이 마약과의 전쟁, 국경 보호 및 불법 이민자 추방 임무에서도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헤리티지 재단 보고서와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고 보도된 지침은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해온 정책을 대변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국의 방위비 분담과 국방비 증대를 요구하면서 불법 이민자 추방 등 국내 문제에 관심을 돌려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술적으로는 예측 불가능하나 전략적으로는 예측 가능하다고 한다. 동맹국을 무역수지와 방위비라는 두 개 잣대만을 통해 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당시 미국의 최대 적국 중의 하나로 유럽연합을 거명하였다. 유럽이 걱정해오던 미국과의 균열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여타 지역의 미국의 동맹국도 우려가 적지 않다.
미국에서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에 빗대어 ‘두 지역 이야기’를 말한다. 유럽에는 많은 혼란이 발생하고 있는데 비해 아시아에서는 연속성과 안보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의 잠재적 전쟁에 집중하기 때문이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처럼 중국·러시아·북한·이란이 연계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단선적 대비가 부족할 수 있는 이유이다.
북한은 이란에 미사일을 제공하고 시리아 원자로 건설을 지원하였으며 러시아에 파병해 유럽 안보에 영향을 미쳤다. 중국과 이란도 러시아의 전쟁을 지원하였다. 나토는 지난해까지 3년 연속으로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등 인도·태평양(인태) 4개국 정상을 나토 정상회의에 초청하였다. 지난해 워싱턴 정상선언은 인태 지역의 발전이 유럽·대서양 안보에 직접 영향을 주어 중요하다고 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럼피즘의 원인이자 결과이다. 세계에서 확대되고 있는 반이민 정서, 극우와 극좌 세력의 전진과 맥을 같이한다. 어려운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정책 변화가 항구적일지 여부이다. 트럼프 행정부 정책이 지그재그 행보를 보이는 점도 어렵다. 미국의 동맹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에 대해 저항·협력·절충 등 방안을 두고 대응을 고심한다.
미국 동맹국의 변화도 계속된다. 우선 유럽연합의 ‘대비 2030’과 독자 핵억제력 논의를 포함한 홀로서기 노력이다. 독일은 국채 한도 관련 의회의 승인을 확보해 원칙적으로 무한정 방위비 지출도 가능해졌다.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 변화이다. 인태 지역의 미국 동맹국들도 각자도생을 고민한다. 동맹은 상호 도움을 위한 것인데 이러한 변화가 미국에 이익이 될지는 불확실하다.
한국이 당면할 문제는 방위비 분담, 미군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비용 부담, 국방비 증대와 함께 무역 수지 흑자 감축 압박일 수 있다. 미·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북한을 핵국가로 인정하고 한국을 패싱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미국 국방부가 향후 5년간 매년 8% 예산 감축을 추진하는 만큼 주한미군 감축, 중국 견제를 위한 주한미군 역할 조정 가능성도 있다. 한국이 자강 노력과 함께 트럼프 행정부의 거래주의적 접근에 초당적으로 유연하게 대비할 필요가 있는 이유이다.

김형진 전 주벨기에·유럽연합대사.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외무고시(17회)에 1984년 외교부에 들어간 후 북미국장, 청와대 외교비서관, 외교부 차관보를 거쳐 전 주벨기에·유럽연합대사, 국가안보실 2차장을 지냈다. 현재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객원연구원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