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로 이동하는 기내에서 취재진과 만나 "다른 나라가 엄청난 것을 제공한다면 상호 관세 협상은 열려 있다"고 말하고 있다. / AFP=뉴스1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됨에 따라 차기 대선까지 60일 동안 한국의 외교·안보는 사실상 비상상황에 놓일 것으로 전망된다.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가동되더라도 정부부처 내 공무원들이 중요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분위기 탓에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25% 관세 부과에도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고, 국방부에선 추후 책임 소재를 가릴 수 있다는 우려에 군 장성급 인사에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헌법재판소는 4일 오전 11시 선고기일을 열고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심판 청구를 재판관 8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했다. 윤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122일,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의결한 지 111일 만이다.
"적보다 우방이 더 나빠" 한국에 25% 관세폭탄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5월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출입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윤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국내에선 60일 이내 치러질 차기 대통령 선거에 관심이 쏠리지만, 시선을 외부로 돌리면 한국 경제의 위기요인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185개국을 대상으로 미국에 들어가는 모든 제품에 10%의 기본관세를 부과하고 한국엔 25%의 관세를 부과한 게 대표적이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선 미국발 통상전쟁 여파로 세계 각국이 관세를 올리면 경제에 막대한 타격이 예상된다. 실제로 1929년부터 약 10년 간 이어진 대공황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미국의 높은 관세 부과가 꼽힌다. 미국은 1930년 6월 대공황 초기 자국 산업보호를 목적으로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시행하며 약 2만개 수입품에 평균 59%, 최고 400%의 관세를 부과했다. 영국, 캐나다 등의 관세 보복으로 세계 무역량은 약 3분의 1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현지시간) 한국과 일본의 자동차 관련 비관세 장벽을 거론하며 "많은 경우 무역에 관해선 적보다 우방이 더 나쁘다"며 "한국, 일본과 매우 많은 나라가 부과하는 모든 비금전적 (무역) 제한이 어쩌면 최악"이라고 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이후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이 문제를 직접 논의하는 것이 적당하다면 전혀 주저하지 않겠다"고 했다.
韓 장관급 소통도 어렵고…주한미군 미사일도 '중동 배치' 합의

한미 군 당국이 북한의 미사일 요격을 위해 한반도에 배치한 패트리엇 일부를 중동으로 옮기는 조치에 합의한 것으로 4일 확인됐다.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주한미군 역할 조정 가능성이 제기됐는데, 이번 병력·무기체계의 순환 배치로 우려가 현실이 되는 모습이다. 사진은 지난 10일 경기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 지대공 유도 미사일 패트리엇(PAC-3)이 배치돼 있는 모습. / 사진=뉴시스
일본과 달리 한국은 사실상 정상외교 부재로 상호관세 부과 등 경제통상 이슈에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안덕근 산업부 장관이 각각 미 국무부와 상무부에 미국의 관세 부과에 우려를 표하는 정도가 최선인 상황이다. 조 장관의 경우 다자외교를 계기로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과의 양자회담 조율도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프레드 플라이츠 미국우선주의정책연구소(AFPI) 부소장은 최근 세종연구소가 주최한 포럼에 참석해 트럼프 2기가 외교정책을 확정하기까지 약 6개월 정도 걸릴 것이라며 추후 한국이 협상을 통해 관세 부과율을 낮출 수 있을 수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정상회담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쯤이면 트럼프 2기의 한국 관련 정책은 마무리 단계여서 협상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 뿐 아니라 안보 위협도 예상된다. 트럼프 2기 국방부는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을 어떤 위협보다 우선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국방 잠정 전략 지침'을 마련했다. 이 때문에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주한미군의 역할 조정과 병력·무기 재배치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로 최근 한미 군 당국은 최근 주한미군에 배치된 패트리엇 전력 중 2개 포대를 중동으로 옮기는 순환 배치 방안에 합의했다. 주한미군 주둔에 관한 방위비로 연간 100억달러(약 14조4000억원) 이상의 분담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에 '코리아 패싱' 가능성

2019년 6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과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판문점에서 만난 모습. / 사진=뉴시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 간 정상회담 과정에서 '코리아 패싱' 가능성도 거듭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정은에게 연락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Well, I do)"고 답했다. 김 위원장과 북한에 대해선 각각 "매우 스마트한 사람" "거대한 핵국가(big nuclear nation)" 등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북한을 핵무력(nuclear power) 보유국으로 지칭했지만 이번에는 국가(nation)라는 단어까지 사용했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서 배타적 권한을 인정받는 '핵보유국'(nuclear weapon state)과는 다른 표현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비슷한 표현을 반복하면서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2기가 미북 정상회담에 나서고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동맹인 한국에 더 큰 역할을 요구할 경우 대북 대비태세 공백이 우려된다.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국제지역연구센터장)는 "중국이 대만해협에서 대만에 무력을 사용하면 미국은 필연적으로 개입하게 되고 주한미군 차출 등의 조치가 이뤄질 것"이라며 "주한미군 이탈로 생긴 공백은 김정은 위원장의 오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軍, 12·3 비상계엄 이후 육군총장 등 주요 직위 대행체제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오른쪽에서 2번째)이 지난 1월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있다. / 사진=뉴스1
한반도 및 동북아 안보 지형이 급변하고 있지만 우리 군은 12·3 비상계엄 이후 인사 공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국방장관 △육군참모총장(대장) △육군 특수전사령관(중장) △수도방위사령관(중장) △국군방첩사령관(중장) △국군정보사령관(소장) 등의 주요 직위가 대행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통상 4~5월 중 이뤄지는 장성급 인사도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이뤄질지 미지수다.
군 고위 관계자는 "50만 병력 가운데 육군이 36만명으로, 북한과 대치 중인 우리로선 육군참모총장의 역할이 상상 이상으로 크다"며 "국방장관의 임명이 어렵다면 최소한 육군총장을 임명해 대북 군사대비태세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장성급 인사가 이뤄지려면 최소한 오는 9월까진 기다려야 한다"며 "1년 가까이 최고 지휘관이 없는 상태에서 군단장, 사단장 등 현장 지휘관의 마음가짐이 풀어질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군사대비태세의 약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육·해·공군과 해병대가 흔들림 없는 대비태세를 공언하고 있지만 군의 기강해이에 따른 대형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공군은 지난달 6일 표적에서 약 10㎞ 떨어진 민가에 KF-16 전투기의 MK-82 폭탄 8발을 떨어뜨리는 초유의 사고를 냈다. 지난달 16일에는 육군에 배치된 수리온 기동헬기에 군용 무인기(드론)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