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지의 해가 온다. 내년은 리하르트 바그너(1813~83)의 4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의 전막 초연 150주년. 장대한 오페라 전체가 유럽을 중심으로 한국까지 곳곳에서 무대에 오른다. ‘반지’ 사이클의 거대한 파도다.
이 오페라는 3대에 걸친 등장인물을 포함하고, 전체 공연 시간은 16시간을 넘긴다. 주인공들의 전사를 보여주는 ‘라인의 황금’부터 ‘발퀴레’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까지, 바그너는 중간에 작곡을 멈춘 10년을 포함해 28년에 걸쳐 전체를 완성했다. 난쟁이(알베리히)에게서 황금을 빼앗는 신(보탄)의 이야기로 시작해 그 황금을 둘러싼 탐욕, 사랑, 죽음, 파멸과 희생을 그린다. 결국 신들의 세계는 멸망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반지’의 메카이자 내년에도 주도적으로 공연을 이끄는 도시는 역시 독일 바이로이트다. 150년 전 ‘니벨룽의 반지’ 전막을 초연했던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은 내년 7~8월 총 세차례에 걸쳐 새로 제작한 4부작을 선보인다. 독일 음악의 상징과도 같은 지휘자 크리스티안 틸레만을 내세웠다.
바이로이트의 ‘반지’ 공연 12회의 티켓은 지난달 30일 판매 시작 후 한 시간 만에 매진됐다. 올해 바이로이트 축제의 공연 티켓이 축제가 시작하는 7월 초까지도 남아있던 '판매 부진' 상황과 대조 된다. 특히 ‘반지’ 4부작을 포함한 바그너의 오페라 7개를 1176유로(약 200만원)에 묶은 패키지 상품이 흥행을 이끌었다.
내년 열릴 많은 ‘반지’ 사이클의 핵심은 연출의 방향이다. 황금에 대한 잘못된 욕망에서 시작돼 파멸로 끝나는 이야기는 그간 오페라 연출가들에게 영감을 줬다. 인간 본성에 대한 고찰, 정치 체제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나아가 환경 파괴에 대한 경고까지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바이로이트의 연출가 마르쿠스 로브스는 인공지능(AI)를 도입해 다양한 해석을 종합하는 무대를 예고했다. 지금까지 ‘반지’와 관련한 이미지·목소리·자료 등을 토대로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한다는 설명이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황금도 등장한다. 파리의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에서 11월부터 ‘반지’ 시리즈를 제작하는 연출가 칼릭스토 비에이토는 황금을 암호화폐로 묘사한다. 가장 강력한 자원을 둘러싼 본능적인 탐욕은 원작 그대로다.
잘츠부르크에서 3월 말 시작하는 부활절 축제에서는 보다 정치적인 해석이 예상된다. 러시아 태생의 키릴 세레브렌니코프와 키릴 페트렌코가 각각 연출과 지휘를 맡는다. 푸틴 정권을 강하게 비판한 예술가다. 세레브렌니코프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사전 인터뷰에서 “이 작품에 우리 시대가 전반적으로 반영돼 있다. ‘권력이 옳다’는 잔혹한 믿음은 사라져야 한다”고 했다. 베를린필은 내년 ‘반지’ 시리즈를 시작해 매년 잘츠부르크 부활절 축제마다 한 편씩 올릴 계획이다. 다만 2028년에는 쇤베르크의 ‘모세와 아론’을 대신 공연하면서 ‘반지’ 사이클은 2030년에 끝난다.
물질을 숭배하는 사회, 권력이 장악한 정세를 묘사하기 좋은 오페라이지만 어떤 연출가는 내면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밀라노의 라스칼라 극장에서 ‘반지’ 사이클을 내년 3월부터 올리는 연출가 데이비드 맥비커는 “구체적인 현대 정치 또는 사회 문제를 기반으로 해석하지 않는다”며 “여기에는 메시지가 없어도 충분하다”고 했다. “대신 인간 존재에 대한 큰 질문과 문제를 다룬다.”
오스트리아 빈의 국립오페라에서 연출을 맡은 스벤-에릭 베흐톨프 또한 구체적 비유를 피한다. 그는 극장과의 사전 인터뷰에서 “‘반지’에서 정치적 메시지는 이제 그리 새롭지 않다. 세계 평화를 지지하고 불의를 타도하는 문장으로 이 작품을 한정할 수 없다”고 했다. 대신 그는 인간의 무의식과 꿈이라는 측면에서 거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빈 국립오페라는 5월과 6월 두 번의 ‘반지’ 사이클을 무대에 올린다.

규모와 깊이 면에서 볼 때, ‘반지’ 사이클은 오페라 극장이 올릴 수 있는 극한의 작품이다. 오페라단과 극장들은 ‘반지’ 기념해인 2026년을 성실히 준비했다.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는 올 1월부터 4부작을 하나씩 무대에 올렸고 내년 2월까지 ‘시험 공연’을 마친다. 4부작을 한꺼번에 공연하는 본격적인 사이클은 내년 11월 시작한다. 라스칼라 극장 또한 2024년 10월부터 4~6개월씩 간격을 두고 4부작을 공연했고 내년 3월에 2주에 걸쳐 두 번의 전곡 공연을 제작한다.
한국에서는 국립 오페라단이 시동을 건다. 내년 10월 ‘라인의 황금’ 공연을 시작으로 2027년까지 4부작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2024년 ‘탄호이저’, 올해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시작한 바그너 시리즈의 일환이자 하이라이트다. 한국에서 ‘반지’ 전곡 공연은 2005년 러시아의 마린스키 극장 내한이 처음이었고, 2022년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독일 만하임 극장과 협력해 공연해 두 번째 완주를 기록했다.
한국의 성악가들도 유럽의 화려한 무대에 참여한다. 베이스 연광철은 내년 11월 파리의 ‘반지’ 시리즈 중 ‘라인의 황금’에 참여해 거인 파졸트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 바리톤 김기훈은 잘츠부르크에서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하며 천둥의 신인 도너로 출연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음악 감독인 김은선은 3년 후인 2028년에 세 번의 ‘반지’ 사이클 지휘를 예고하고 있다.
4부작 완주가 오페라 극장의 꿈이라면, 전체 관람은 청중의 인생 경험이다. 오케스트라와 성악가들에게 만만치 않지만 청중에게도 그렇다. 내년 여름 바이로이트 축제에서 ‘반지’의 마지막인 ‘신들의 황혼’ 공연은 오후 4시에 시작해 10시 35분에 끝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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