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사》, 오늘날의 용산궁을 미리보다

2025-03-06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50여 년 전의 책이 지금까지 집에 남아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평생 떠돌이 생활을 했는데 이사 다닐 때마다 책이 무더기로 버려진다. 반백 년이 지난 책으로 지금껏 남아 있는 것은 기껏 두엇에 불과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오지영의《동학사》. 1973년 출판본이 주인을 몇 번 바꾸어 내게 온 것은 그 이듬해 봄이었다.

이 책은 원래 일제강점기 말인 1940년에 출판되었다고 한다. ‘왜(倭)’를 일부러 ‘복(伏)’이라 적고 있는데 일제의 검열을 의식한 것이라고 했다.(이 책의 411쪽)

이 책을 대학 2학년 어느 봄날 읽다가 좀 기이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애써 비유를 해 본다면, 나를 칭칭 얽매고 있던 촘촘한 올가미가 한순간 썩은 동아줄처럼 허물어 내리고 정신과 몸이 공중 부양하는 듯하였다. 오랫동안 유폐되었던 깜깜한 동굴에서 뛰쳐나온 듯도 하였다. 와룡생의 무협지를 처음 읽었을 때도 그랬던가? 그런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을지.

무협지는 버렸지만 《동학사》는 아직 못 버리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어쩌다 한 번씩 이 책을 들춰보는데 첫눈을 맞추었던 스물두 살 때의 감동이 전혀 오지 않는 것이다. 이상도 하다. 같은 책인데 왜 이러나. 내가 다시 죽어 버렸나.

지금 다시 들추어 보니, 옛날의 감동이 오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눈을 파고들어 오는 대목이 있다. 마치 오늘날의 용산궁을 미리보기한 듯한 내용이 아닌가?

여기 옮겨 본다.

“…한편 민중전(閔中殿)으로 말하면 여걸이란 평을 들었지만, 왕권을 빌어 자기 세력을 심었고, 외적과 연락하여 자당의 세력을 옹호하였고, 무당ㆍ요승(妖僧) 등과 짜고 나라돈을 낭비하였고, 잡배들을 끌어들여 국정을 문란케 하는 등 해괴망측한 일이 많았다. 궁궐 안에는 귀신이 많아 밤이면 잠을 잘 수 없다면서, 무당ㆍ판수ㆍ승려며 기타 잡술객들을 불러들여 굿을 하고 경을 읽고 염불을 하였다. 또 한편으로는 창기화랑(娼妓花郞, 기생과 화랑)이며 온갖 건달 잡류를 모아들여 연락(宴樂, 잔치를 벌여 즐김)을 일삼았다.

대궐 안은 일대 난장판으로 변하고 말았다. ….

이로부터 궁중에서는 주야가 전도되고 국정은 날로 문란하고 민원은 날로 커져갔다. 그 중에서도 가장 탄식할 일은 무당ㆍ판수ㆍ창기ㆍ화랑(꽃 미남?)들의 화대….

그것들의 머리 위에 감투를 씌워주는 것을 다반사로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소위 귀중품이라고 하는 옥관자(玉貫子), 금관자(金貫子) 같은 것도 그것들의 귀밑에 함부로 달아주는 것이었다. 높은 벼슬아치들도 그것들의 손에서 허다하게 쏟아져 나왔다.

홍간(紅簡=붉은 편지, 내전-內殿의 편지)이라 하는, 무서운 세력을 지닌 편지를 하루에도 몇 십 장씩 얻어내어 돈타작질을 마음대로 하게 되었다. 홍간이란 편지는 죽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산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정말 무서운 편지였다. 이 홍간은 별입시나, 내관이나, 궁녀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별입시(別入侍)란 척신이나 기타에 접근하여 아첨 잘하고, 곱게 보이는 놈이다. 술객붙이(점술가부류) 중에서 많이 생겨 나오는 것이었다. 별입시의 행동은 일정한 시간이 없이 긴한 일만 있으면 주야를 가리지 않고 내전에 드나들며 국정 농단을 일삼는 권리를 지니고 있었다.

임금과 가장 친밀하고 무난한 사람(민비)이므로 그러는 것이었다. 그것의 특징은 관직 매매와 기타 돈벌이 소개와 풍수 기도, 불공 등이고 화랑창기 날탕과 …”

(오지영-吳知泳 저, 이규태 교주-校注 《동학사》, 180~182쪽)

이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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