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싸움에 천재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다른 면에선 평범한데 싸우는 일에서만큼은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몸으로 싸우는 싸움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정치판의 싸움이다. 정정당당한 싸움이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야비한 싸움일수록 그런 사람들의 능력은 더욱 빛난다.
그런 싸움에선 뻔뻔스러워 부끄러움이 없는 ‘후안무치’가 큰 힘을 발휘하기 마련인데, 그걸 재능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반론도 가능하겠다. 하지만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박수와 지지를 받는다면 내키진 않지만 일단 재능으로 인정해주기로 하자. 그런 대표적인 싸움꾼으로 미국의 전 하원의장 뉴트 깅그리치를 빼놓을 순 없을 것이다.
1994년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민주당을 꺾고 상하원 모두 다수당이 되었다. 하원에서 공화당 다수 체제를 구축한 것은 40년 만의 대사건이었기에 ‘보수주의자들의 쿠데타’로 불렸으며, 그 주역인 깅그리치를 부각해 ‘깅그리치 혁명’으로도 불렸다. 그러나 오늘날의 관점에서 돌이켜보자면, 진정한 ‘깅그리치 혁명’은 극단적인 ‘정치의 전쟁화’였다. 그의 활약상을 잠시 감상해보자. 조지 패커의 <미국, 파티는 끝났다>와 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 나온 내용을 소개한다.
1979년 36세에 하원의원이 된 깅그리치는 이후 20년간 당시로선 상상을 초월하는 전투적 스타일로 악명과 더불어 열혈 지지자들을 얻었다. 그는 1983년에 자신과 뜻이 맞는 소장파 의원들의 모임을 만들어 민주당을 공격하는 첨병 역할을 맡았다. 그는 마오쩌둥의 ‘무혈전쟁’이라는 말을 즐겨 인용하면서 젊은 의원들에게 정치하는 법을 가르치면서 그들을 전사로 길러냈다.
깅그리치는 언론이 무엇보다 싸움을 가장 좋아한다는 것을 꿰뚫어보고 그런 속성을 잘 이용한 미디어 선동가였다. 그는 민주당 원로들을 화나게 만들 독설과 욕설을 내뿜었다. 이에 큰 흥미를 느낀 언론매체들이 그걸 대서특필해대면서 깅그리치는 유명해졌고 강성 공화당원들의 뜨거운 지지를 누리게 되었다. 그는 문제의 틀이 단순한 흑백논리로 보일 때 지지자들이 돈을 더 많이 보낸다는 것을 알고 모든 문제를 극단적인 선악 이분법의 문제로 몰아갔다.
깅그리치가 만든 ‘워싱턴 지옥’
1995년 하원의장이 되면서 깅그리치는 “신질서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구질서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공화당과 민주당을 영원한 적대 관계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품고, 그걸 곧장 실천에 옮겼다. 깅그리치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의회 근무일을 주 5일에서 주 3일로 단축한 것이었다. 지역구에서 선거구민들과 더 어울리면서 모금 활동에 집중하라는 뜻이었다지만, 이 조치가 미친 영향은 컸다. 가족을 데리고 워싱턴으로 이사하는 의원이 줄었고, 의원들이 소속을 초월해 우정을 쌓던 전통이 무너졌다.
또한 깅그리치는 공화당 의원들이 민주당 의원들과 협력하는 것을 금지했으며, 의원들의 언어 사용에까지 적극 개입했다. 평소 민주당 의원들을 나치에 비유하곤 했던 깅그리치는 공화당 의원들이 민주당 의원이나 민주당에 대해 말할 땐 ‘부패했다’거나 ‘역겹다’ 같은 혐오감 유발 어휘들을 사용하라고 권고했다. 깅그리치가 이런 일련의 ‘혐오 키우기’ 프로젝트를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초당파적 모임과 회의, 그리고 막후 협상 같은 것이 사라졌으며, 이런 규범은 하원을 넘어 상원마저 지배하고 말았다.
깅그리치가 남긴 유산에 대해 패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새 천년에 들어서자 양 진영은 서로 참호를 깊이 파고 대치한 가운데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으며, 이 흙구덩이 속으로 시체가 쌓였다. 작년에 쌓은 유골 위로 올해의 유골이 쌓였고, 아무도 정확한 원인을 설명하지 못하는 전쟁은 끝이 없을 것 같았다. 그야말로 ‘워싱턴 지옥’이었다.”
한국 정치판은 어떤가? ‘의원 12년, 시장 8년’ 생활 후 정계를 떠나는 평택시장 정장선이 중앙일보 인터뷰(2025년 10월4일자)에서 한 말을 들어보자. 그는 “폭력은 사라졌는데, 여야 대립과 양극화는 더 심각해졌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솔직히 정치가 안 보인다. 그때는 싸우더라도 양당의 리더들이 막후에서 만나기도 하고, 중도파나 소장파들끼리 모여 스터디도 하고 의기투합하는 것도 있었다. 국회선진화법만 해도 우리 당의 김부겸·김진표·김성곤 의원, 한나라당의 남경필·원희룡·정병국·홍정욱 의원 등과 함께 스터디하면서 만든 거다.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서로의 공통분모도 찾아진다. 그걸 찾아서 무언가를 만드는 게 정치다. 요즘은 그런 게 없는 것 같다.”
이젠 정장선이 원하는 그런 일을 했다간 큰일 난다. 한국의 깅그리치가 되고 싶어 안달하는 정치인들의 눈치도 봐야 하고, 무엇보다도 강성 지지자들이 먼저 들고일어난다. 어느 민주당 중진 의원은 “지금 우리 당 초선은 물론 일부 재선 의원도 야당과 사적으로 만나면 큰일 나는 줄 안다. 밥 먹는 건 고사하고 과거 흔했던 여야 공부 모임도 없어졌다. 이들이 3선, 4선 될 때쯤엔 교류가 완전히 끊길 수도 있다.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면 이게 정말 큰일 아니냐”고 했다.
2025년 9월30일자 칼럼에서 이 말을 전한 조선일보 논설위원 황대진은 이런 말을 덧붙였다. “상대방과 만나면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예전 정치권 표현으로 ‘사쿠라’, 요즘 민주당 말로 ‘수박’으로 찍히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찍히면 더 이상 공천을 받기 어렵고, 초선으로 정치 인생이 끝날 수도 있다. 그래서 여야 공통으로 선수가 낮을수록 지지층 눈치를 더 많이 본다고 했다.”
그의 저주가 한국서도 뿌리내려
경향신문(2025년 10월2일자)이 전하는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모경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일 추석 연휴를 맞아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과 참가하기로 한 스타크래프트 대회에 불참키로 했다. 전날 대회 참가 소식이 언론에 보도된 뒤 민주당 당원 일부가 비판하고 나선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모경종은 자신의 X(구 트위터)에 “여러분들께서 주신 여러 의견을 보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면서 “스타크래프트 대회 참가 소식으로 많은 분께 심려를 끼쳐드렸다”고 썼다. 그는 “여러분의 따끔한 질책의 말씀대로, 지금은 우리 모두가 단일대오를 이뤄 싸워야 할 때”라며 “이번 일로 실망하신 모든 분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개혁신당은 이 대회가 여야 정치인들의 화합과 교류의 장을 열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고 밝혔지만, 그런 ‘화합과 교류’는 ‘단일대오 투쟁’에 해가 된다는 게 강성 지지자들의 생각이었다.
강성 의원과 강성 지지자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지만, 최종적인 ‘갑’은 지지자들이다. 양쪽 사이에 갈등이 생겨 대립 구도로 비화했을 때 익명의 지지자가 개인적으로 입을 타격은 없지만 정치인이 입을 타격은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강성 의원들은 끊임없이 강성 지지자들을 향해 자신을 입증해야 한다. 그들을 기쁘게 만들 수 있는 거칠고 사나운 모습을 촬영해 유튜브 영상으로 올리는 게 주요 업무가 되었고, 그래서 국회 국정감사는 ‘유튜브 촬영장’으로 변질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원들끼리 욕설을 주고받는 난장판이 자주 벌어지는 것도 바로 그런 업무의 변화와 무관치 않다. 의원의 품위·명예 훼손 등을 사유로 의원들이 서로 제출한 징계안 건수는 16대 국회(2000~2004년)에서 13건이던 것이 21대 국회(2020~2024년)에선 53건으로 늘었다. 현 22대 국회에서는 1년4개월여 만에 벌써 42건이나 되었으니, ‘혐오의 일상화’라는 깅그리치의 저주가 한국에서도 뿌리를 내린 셈이다.
“대립과 갈등, 분열을 부추기는 일체의 행위를 중단하자. 극단적 대결의 언어를 추방하자. 지금 대한민국이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극단적인 갈등과 분열을 해소하는 것이다.” 국회의장 우원식이 윤석열 파면 직후 대국민 담화를 통해 밝힌 메시지다. 감동적인 말이었다. 그런데 이후 최악의 상황이 국회에서 전개되고 있건만 그는 과도한 정쟁을 자제해달라는 당부만 할 뿐 이렇다 할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우원식이 깅그리치와는 정반대 편에서 ‘혐오의 일상화’ 대신 ‘소통의 일상화’를 위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최악 국회’의 의장이었다는 불명예는 피해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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