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정말 가치중립적일까? 랭던 위너는 ‘기술의 정치성’이라는 논문에서 의미심장한 사례를 소개했다. 1920년대 뉴욕 롱아일랜드의 해변으로 향하는 도로의 다리가 의도적으로 낮게 설계돼, 버스가 통과하지 못하게 만들어졌다. 그 결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서민들은 해변에 갈 수 없게 됐고, 해변은 자동차를 소유한 부유층만의 공간이 됐다. 겉보기엔 단순한 건축 설계였지만, 실제로는 계층 간 차별을 구조화한 정치적 기술이었던 것이다.
이는 기술이 겉으로는 중립적으로 보여도, 그 설계와 적용 과정에서 특정 가치를 반영하고 강화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인공지능(AI) 기술도 마찬가지다. AI 알고리즘이 채용 과정에서 소수자를 차별하거나,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이 특정 정치적 의견을 확산시키는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이는 기술이 단순한 도구가 아닌 사회적 가치와 권력관계를 담는 그릇임을 시사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의 ‘모두의 AI’ 정책은 시의적절하나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이 전 대표는 “대한민국이 AI 글로벌 3대 강국으로 도약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100조원대 투자, 규제 합리화, 지역거점 대학들을 중심으로 한 AI 인재 양성을 통해 K-AI 시대를 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의 비전은 AI가 특정 계층, 지역 또는 대기업의 전유물이 아닌 모든 국민이 공평하게 활용할 수 있는 공공재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 혜택을 모든 국민이 누릴 수 있게 국가가 개입한다는 발상은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교훈이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모든 아이에게 노트북 한 대’ 프로젝트는 개발도상국에 많은 노트북을 보급했지만, 교육 격차 해소나 경제적 발전 효과는 미미했다. 이는 단지 무상보급이나 낮은 가격으로 기술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현지 상황과 문화적 맥락, 사용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기술 보급이 초래할 사회 변화에 대한 고민과 통찰로 현실적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AI를 통한 사회 문제 해결도 마찬가지다. AI가 가져올 변화를 예측하고,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하다. AI 기본사회에서 모두가 저렴하게 AI를 쓰게 된다는 장밋빛 청사진을 넘어 AI가 노동, 가족, 교육, 지역발전 등에 미칠 영향을 깊게 고민하고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할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 예를 들어 AI가 육아를 지원해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단순한 전망보다는, 육아 부담 감소가 실제 출생률 증가로 이어지도록 사회과학적 분석에 기반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AI가 가정에서 어떻게 활용될지, 일과 가정 간 균형이 어떻게 변할지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결국 모두의 AI 정책은 매우 적절하고 시대정신에 부합하지만, 단순한 기술 접근성 문제로 끝나선 안 된다. 우리 목표는 AI 접근성 보장이 아닌 AI로 사회를 더 공정하고 인간 중심적으로 바꾸는 것이어야 한다. 위너의 통찰이 지금도 유효하듯, 기술이 가치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AI를 우리가 원하는 사회적 가치 구현에 활용해야 한다. 모두의 AI 시대에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에 기반한 딥소트(Deep Thought) 혁신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