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히스토리' 창시자 데이비드 크리스천
우리는 지구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첫 번째 세대다.
약 138억 년의 우주사를 인간의 역사와 함께 재구성해낸 학문 ‘빅 히스토리(Big History)’의 창시자인 데이비드 크리스천(79) 호주 매쿼리대 명예교수는 올해 창간 60주년을 맞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인류는 자신의 지식과 기술로 지구를 파괴할 수도, 지속 가능한 문명을 만들 수도 있다”며 “선택은 오직 우리의 집단적 지혜에 달려 있다”고 진단했다.

1989년 시드니대에서 처음 개설된 그의 ‘빅 히스토리’ 강의는 우주론·지질학·생물학·역사를 통합하며 학계의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그는 “학생들이 별과 원소, 생명과 문명, 그리고 인간인 자신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깨닫게 하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그의 학문 세계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인 빌 게이츠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세계적인 교육 프로젝트로 거듭났다. 인간 너머에선 인간을 어떻게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는지 크리스천 교수에게 직접 물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빅 히스토리, 인류의 새로운 기원
‘빅 히스토리’의 탄생 배경은.
현대 지식의 다양한 분야가 어떻게 맞물리면서 세상이 지금처럼 됐는지를 젊은 세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했다. 현대 사회는 방대한 지식을 축적하고 있지만, 학생들은 세부 사항 속에서 길을 잃기 쉽다. 학교에서는 화학, 역사, 기후변화를 따로 가르치고, 그 모든 지식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제시하지 않는다. 빅 히스토리는 마치 산꼭대기에서 전경을 보는 것처럼 전체 구조를 조망하게 한다. 이는 인간이 우주 속 어디에 있는지를 이해하게 하는 현대의 ‘기원 이야기(Origin Story)’로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류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탐구하는 길이 된다. 소셜미디어가 잘못된 정보로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시대에 빅 히스토리는 통합적 시각을 제공한다. 아울러 인류 전체가 긴밀히 연결된 오늘날의 세계에서 ‘국사’보다 ‘인류사’를 가르쳐야 하는 이유를 알려준다.

학문 형성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과 도전은.
현대 지식 체계는 특정 분야만 깊이 연구하는 전문가 중심 구조로 운영된다. 반면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시도는 ‘피상적’이라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세밀한 관찰과 넓은 조망을 함께 할 때 진정한 이해가 가능하다. 처음에 빅 히스토리를 학문적으로 인정받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1989년 호주 매쿼리대학에서 천문학, 지질학, 생물학, 고대사 등 다양한 전공의 교수들이 참여해 첫 강의를 개설하면서 전환점을 마련했다. 학문 간 연결 고리를 찾는 과정은 어려웠으나, 결국 모든 분야가 ‘우주와 인류의 진화’라는 일관된 이야기 속에 있음을 발견했다. 그 핵심은 ‘복잡성의 증가(increasing complexity)’라는 개념이었다. 초기 우주는 단순한 에너지 흐름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입자·원자·별·행성·생명으로 발전했고, 인간의 출현은 그 진화의 결정적 전환점이다. 오늘날 인류는 그 힘으로 지구를 변화시키고 있고, 이를 통제할 수 있는지가 인간의 남은 과제다.
‘8개의 임계점(Thresholds)’ 개념은 어떻게 탄생했나.
‘복잡성의 임계점(thresholds of increasing complexity)’은 우주 속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이 등장하는 순간을 의미한다. 에너지와 물질이 새로운 방식으로 재배열돼 전혀 다른 성질의 존재가 출현하는 시점이다. 이 개념을 통해 우주의 진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여덟 가지 임계점은 ①빅뱅을 통한 우주의 탄생, ②별의 출현, ③별 내부에서 원소의 형성, ④행성과 지구의 생성, ⑤지구 생명의 기원, ⑥인류의 출현, ⑦농경사회의 형성, ⑧인류세(Anthropocene)다. 이들은 우주의 창조적 에너지가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며, 인류가 그 안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인류의 위기
트럼프 대통령의 복귀 이후 국제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인류는 다시 ‘약육강식의 법칙’으로 회귀할까.
인류는 언어를 통해 지식을 세대 간에 축적하고 공유하는 유일한 종이다. 이 집단 학습과 지식의 축적이 기술 혁신을 낳아 문명의 발전을 이끌어왔다. 오늘날 인류는 그 힘을 현명하게 사용할 지혜가 부족한 상태에서 기후위기, 핵전쟁, 정치·경제 불안에 직면했다.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는 국제협력 체제에 심각한 불안을 초래하며, 국가 간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집단학습과 기술혁신은 여전히 인류의 구원 수단이 될 수 있다. 다만 그 잠재력이 실현되려면 인류가 국가·이념·종교의 경계를 넘어 공동의 운명체로서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문명과 국가마다 발전 속도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불균등하게 발전했다. 각 지역의 환경과 역사적 맥락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불균형은 세계적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일부 집단의 지배와 피지배 구조는 분열을 심화시키고, 공동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따라서 인류 전체에 대한 존중과 상호 이해가 절실하다. 지구 반대편에서 발생한 재난에도 전 세계는 도움을 보낸다. 또 다문화 사회가 확산되고 있다. 이는 인류가 점차 하나의 공동체로 변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은 계엄령, 대통령 탄핵 등 혼란을 겪었다. 민주주의의 붕괴가 문명의 몰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는가.
한국의 최근 정치사는 현대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민주주의의 강점은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과 시민의 참여의식이다. 하지만 때론 의사결정이 느리고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단점도 있다. 오늘날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는 줄어드는 추세지만 한국처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우려는 시민들이 많이 존재하는 나라도 있다. 이런 시민의식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지속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이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민주주의의 운명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급속히 발전하는 인공지능(AI)은 위기로, 기회로도 평가된다. 어떻게 생각하나.
AI는 언어, 문자, 인쇄술, 컴퓨터에 이어 인류가 만든 가장 강력한 정보기술이다. 단순한 저장을 넘어 스스로 분석하고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집단학습의 범위를 비약적으로 확장한다. 그러나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인류가 그 힘을 현명하게 사용한다면 AI는 문명 발전의 동반자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위협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인류의 미래는 그 선택에 달려 있다.
인류의 미래
그렇다면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인류는 지금 스스로 문명을 파괴할 수도, 구할 수도 있는 전환점에 서 있다. 파괴를 피하려면 협력이 필요하다.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전 지구적 교육체계, 교역과 소통의 확대는 인류가 협력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존재하지 않던 이런 국제적 연결망은 인류를 ‘하나의 행성 공동체’로 이끌고 있다. 비록 우주는 무심하지만, 지금 인류가 내리는 선택은 지구의 미래를 수백만 년 동안 좌우할 것이다.

100만 년 후 인류 문명은 어떻게 기억될까.
100만 년은 인류 역사에서 그리 긴 시간도 아니다. 인류가 자멸하지 않는다면, 후손들은 이 시대를 ‘지혜를 통해 전환점에 도달한 세대’로 기억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인간은 ‘스스로를 파멸한 종’으로 남게 될 것이다. 결국 미래의 역사가들은 우리가 지금 내리는 선택으로 인류 문명을 평가하게 될 것이다.
끝으로 크리스천 교수는 “우리는 모두 같은 종의 구성원”이라며 “이제는 ‘누가 더 강한가’보다 ‘어떻게 함께 살아남을 것인가’를 물을 때”라고 마지막 한마디를 남겼다.
☞데이비드 크리스천
1946년 미국 뉴욕 출생인 그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러시아사로 박사학위를 받고 호주 매쿼리대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샌디에이고주립대 교수직과 국제거대사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며 학자의 길을 걸었다. 2009년부터 5년간 이화여자대학교 지구사연구소 석좌교수로 역임하는 등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맺기도 했다. 그는 1989년 세계 최초로 빅 히스토리 강의를 개설하며 2004년 출간한 저서『시간의 지도』로 세계사학회 최고도서상을 받았다. 이후 출간한 저서『빅 히스토리』와 『오리진 스토리』도 인기를 끌며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지난달엔 인류의 미래를 다룬 『빅 퓨처』가 국내 출간됐다. 동시에 그는 2011년 빌 게이츠의 지원으로 중고등학생 대상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 ‘빅 히스토리 프로젝트’를 공동 설계하며 미래 세대 교육에도 힘썼다. 현재 미국·호주·한국 등 전 세계 150여 개 학교에서 그의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그의 TED 강연 ‘18분으로 배우는 세계사’는 누적 조회수 2300만 회를 넘기며 ‘TED에서 꼭 봐야 할 11개 강연’으로도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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