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119구급대원의 고백
어느 119구급대원의 고백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는 사람, 소방관. 그들이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대단한 영웅 서사도, 훈훈한 미담도 아닙니다. 아프고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의 가슴 아픈 현실일 뿐이죠. 9년 차 구급대원인 백경 소방관이 마주한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의 서사를 들려드립니다.

다급하고 황망한 목소리였다.
시골집에 홀로 살고 있던 엄마가
마치 연기처럼 사라졌다고 했다.
출동 후 만난 딸의 얼굴엔
당혹감이 가득했다.
딸은 매일 눈 뜨자마자
혼자 사는 엄마에게 전화하는데
이날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딸은 곧장 차를 몰아
한 시간 거리의 시골집을 찾았다.
집 안엔 아무도 없었다.
뒤꼍의 백구가 사는 개집까지 텅 비었다.
산책을 좋아하는 엄마가 실족했을까 싶어
집 주변을 뒤지는 동안 눈이 쏟아졌다.
눈이 세상의 윤곽을 지우고
엄마의 하얗게 센 머리칼마저
지워버릴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통화하신 게 언제라고 했죠?”
딸에게 물었다.
“어제 아침이요.”
“치매가 있으신가요.”
“네. 그렇긴 한데,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아직 초기고….”
맥이 빠졌다.
치매가 갑자기 악화하는 경우는 흔했다.
하루 전만 해도 멀쩡히 얘기했는데
돌연 말을 못 한다거나,
매일 오가던 길을 기억 못 해
시장통에서 헤맨다거나,
자식들에게 밥 먹고 가라고 한 뒤
압력솥에 생마늘을 찐다거나.
구급차를 타며 경험한 것만도 여럿이었다.
어제 아침에 마지막 통화를 했다면
노인은 24시간이 넘도록
바깥에 나와 있는 건지도 몰랐다.
너무 덥거나 추운 날 실종된
치매 노인들의 최후는 대개 비슷했다.
열기를 못 이겨 죽거나, 얼어 죽었다.
노인은 평소 보행보조기를 끌고 다녔다.
겨우 집 가까이 텃밭이나 일구는 게
해를 맞으며 하는 유일한 일이라고.
그럼, 멀리는 못 가셨겠는데?
머릿속에 어떤 직감이 번뜩였다.
마당을 가로질러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방마다 문을 열고, 화장실 문을 열고,
창고 문까지 열어 안쪽을 살폈다.
“아까 제가 다 뒤져 봤어요.”
딸이 말했다.
직감은 개뿔.
연거푸 헛발질만 하는 사이
눈발이 더 굵어졌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저수지가 있었다.
어쩌면 노인은 저수지 둘레 길을 거닐다
미끄러져 물에 빠진 걸지도 몰랐다.
긴 막대 하나를 집어
물가의 썩은 낙엽을 헤집고 있는데
저만치 멀리서 딸이 소리쳤다.
“여기요!”
막대기를 집어던지고 그리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