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제역 청정지대로 여겼던 전남지역에 구제역이 발생하면서 지역사회는 물론 축산업계가 큰 충격에 빠졌다. 13일 영암지역을 시작으로 26일 오전 8시 기준 영암 13곳, 무안 1곳 등 14곳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일 이후 진정세에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2023년 5월 이후 1년 8개월 만에 구제역이 재발한 이유는 무엇일까. 조기 종식을 위한 대책은 없는 것일까. ‘농민신문’이 구제역 긴급 좌담회를 개최했다. 참석자는 생산자·전문가·정부 관계자 3명이다. 형식은 서면으로, 21일 공통 질문을 던졌고 24일 답을 받았다.
- 전남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것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최초다. 청정지역에서 발병한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최정록 국장=유전자 분석 결과 최초 농장에서 검출된 바이러스가 ‘O형’으로, 2021년 몽골에서 확인된 것과 유사성이 98.1%로 확인됐다. 2023년 충북 청주와 증평에서 검출된 구제역 바이러스와의 상동성은 다소 낮다. ‘국내 재유행’보다는 ‘외국 신규 유입’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다각도로 역학조사를 진행 중이다.
▶서영석 국장=정부에서 명확한 역학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 발병 원인을 예단하기가 조심스럽다. 특히 전남은 한우농가 대부분을 공수의사가 직접 백신접종을 했는데도 구제역이 연이어 터져 당혹스럽다. 농가의 해외 여행 동선, 외국인 근로자간의 접촉, 사료 운송차량 이동, 수의사와 축산 관계자로 인한 전파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허주형 회장=전남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백신접종이 잘 이뤄지는지 의문이다. 정부·지방자치단체에서는 항체형성률이 90%가 넘는다고 발표하는데 실제 전수조사를 해보면 20%도 안되는 결과가 나온다. 한국도 대만(2020년 비백신 청정국 지위 회복)·일본·태국처럼 사육 우제류(발굽이 두개인 가축) 전체를 대상으로 백신접종에 나서야 한다. 전국 수의사와 수의과대학 학생을 동원하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 전남에선 사육마릿수 100마리 이상 농가는 농장주가, 100마리 미만은 공수의사가 접종했다. 현장에서 백신접종이 잘되고 있다고 보는지.
▶허주형=전남 구제역 발생 사태는 ‘농가 자가접종’에 구멍이 생겼다는 것을 방증한다. 전남에서 구제역이 발생하기 전인 7일 백남수 전남수의사회장이 지역 총회에서 “전남지역 (대규모) 농가를 중심으로 백신접종 활동이 상당히 저조하다”고 경고했다. 백신 유통·접종 과정에서 수의사가 배제되는 작금의 현실에서는 백신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최정록=정부는 매년 4월과 10월 전국 소·염소 농가를 대상으로 ‘일제 접종’을 한다. 역학조사를 좀더 해봐야겠지만 전남의 발생 상황을 보면 자가접종한 농가뿐 아니라 공수의사가 관리해준 농가에서도 접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 확인됐다. 2023년 충북 구제역 발생 때 총 11건 가운데 10건이 자가접종, 1건이 공수의접종이었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양상이다.
- 허술해진 공항만 방역망을 틈타 외국인 근로자 등을 통해 구제역 바이러스가 유입됐다는 주장도 있는데.
▶서영석=어느 정도 동의한다. 지금처럼 공항에서 축산인이나 최초 입국하는 외국인 근로자만 집중적으로 소독 받는 것은 한계가 있다. 외국 여행객과 외국인 근로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모든 입국자가 잘 갖춰진 방역시설을 반드시 통과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허주형=방역은 제2의 국방이란 말이 있다. 일본·대만은 공항에서 모든 승객을 대상으로 발판 소독을 철저하게 한다. 그런데 한국은 게이트별로 소독판 설치 여부가 다르다. 여기에서 국경방역의 허점이 생긴다고 본다. 지금부터라도 공항의 모든 게이트에 눈에 잘 보이는 소독판을 설치해야 한다. 신발 소독만 잘해도 가축질병을 예방하는 데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 26일 오전 기준 영암·무안 두 지자체에서만 확진 판정이 나왔다. 앞으로 전남 내 다른 지역으로, 더 나아가 전국으로 확산할 수 있다고 보나.
▶최정록=과거 발생사례, 예방접종 시스템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전국 확산 가능성은 매우 낮다. 22일 전남권의 일제 접종을 끝냈고, 3월말이면 전국 모든 소·염소의 접종이 완료될 예정이다. 최근 상황을 보더라도 영암에 국한해 확진 사례가 나오고 있고, 17일 3건에 이어 18·19일 각 2건, 20일 1건, 21·22일 각 0건, 23일 1건으로 다소 안정화되는 추세다. 바이러스 잠복기(2∼14일)를 고려하면 4월부터 감염농장이 나오지 않으리라고 관측한다.
▶서영석=전남지역 백신접종이 잘 마무리됐기 때문에 더는 확산이 없을 것이다. 다만 잠복기와 항체 형성까지 공백기가 있어 3월말까지는 방역의 고삐를 단단히 죌 필요가 있다. 전남권 축산농가가 구제역 발생을 계기로 질병 예찰활동을 한층 강화했고, 질병 의심신고도 빠르게 이뤄지는 편이라 전남 외 지역으로 바이러스가 퍼지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허주형=영암·무안에서만 발생했고, 돼지로는 전이되지 않은 점에 비춰보건대 조기에 종식될 것이라 믿는다. 3월 넷째주가 지나면 항체가 형성돼 더이상 전파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다.
- 소나 돼지와 견줘 상대적으로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염소가 구제역 바이러스를 매개했을 가능성도 대두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서영석=‘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개식용종식법)’이 시행된지 6개월이 지나면서 개고기 대체재인 염소 수요가 급증했다. 더욱이 전남은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염소 사육마릿수가 가장 많다. 이런데도 염소는 축산물이력제에 포함되지 않는 등 소·돼지보다 방역체계가 허술하다. 염소농가 급증에 따른 한우농가의 불안감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다.
▶최정록=올해 전남에서 염소가 구제역 확진을 받은 예가 없어 ‘염소가 구제역을 옮겼다’는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다만 2023년 염소가 구제역에 걸린 일이 있기 때문에 마음을 놓을 순 없다. 현재 염소농가에게 임상 증상을 주제로 다양한 교육·홍보활동을 펼치고 있고, 구제역 의심 증상이 있을 땐 즉시 신고할 것을 독려 중이다. 염소 사육농가가 증가하는 만큼 전문가를 모아놓고 특임조직을 운영해 방역관리 강화방안을 따로 마련할 계획이다.
- 이밖에 각자 입장에서 농민·정부·관계기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허주형=정부는 전남 구제역 발생을 계기로 백신 보급·유통·접종 모든 단계의 관리를 민간 수의사에게 이관해 백신정책을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일선 동물병원에 구제역 키트를 공급해 발 빠르게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방안, 어느 수의사가 주사를 놓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수의사 주사 이력제’ 등을 정부에 주문하고 싶다.
▶최정록=구제역은 전파속도가 매우 빠르고, 2010∼2011년 전국으로 확산해 2조원의 재정을 지출할 정도로 상당히 위험한 전염병이다. 농가는 경각심을 가지고 적기에 올바른 방법으로 백신을 접종해줄 것을 부탁한다. 구제역은 축산물 수출과도 직결된다. 농가, 현장 수의사, 정부가 힘을 합쳐 한국이 구제역 청정국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한다면 국내 축산물 수출이 더욱 활기를 띨 것이다.
정리=이문수 기자 moons@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