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의 풍경

2025-09-07

매일 아침이면 많은 시민들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출근길을 나선다. 이 길의 모습 속에는 한 사회의 구조와 구성원들의 신뢰, 공적 건강, 그리고 민주주의의 질을 가늠하는 척도들이 녹아 있다. 줌렌즈로 풍경을 담듯 출근길을 들여다보면 이 사회의 복잡다단한 풍경이 펼쳐진다.

편향되긴 하지만 일단 인구의 절반이 거주하는 수도권 통계를 보자. 2024년 서울시의 추정에 따르면 평일 하루 수도권을 오가는 인구 이동은 7135만건이고, 수도권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시간은 평균 71분, 서울에서 수도권으로 출근하는 시간도 평균 59.4분이 걸린다. 도로는 막히고, 버스와 지하철에서 사람들은 짐짝이 된다. 자가용으로 출근하는 이들은 최소한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하는 낙을 누릴 수는 있지만, 다른 수단에 비해 정신적 에너지를 가장 많이 소진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반대로 버스와 지하철로 출근하는 이들은 운전의 피로감 대신 몸들이 부대끼는 과정에서 밀려오는 불쾌감과 피로를 감내해야 한다. 내비게이션은 모습을 바꾼 ‘오늘의 운세’다. 갑자기 접촉사고나 싱크홀이 발생하거나, 눈·비·작동 오류로 도로가 막히고 지하철이 연착된다는 방송이 들려올 때면 현실이 밀려든다.

모두가 이런 출근길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재택근무나 유연근무를 선택할 수 있는 이들에게 출근길은 그나마 조금 인간적이다. 기사가 모는 자동차로 출근하는 이들에게 출근길은 업무를 보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이동 사무실이다.

수많은 교대근무자들의 삶은 또 다르다. 출근하는 이들의 출근길을 위한 대중교통을 작동시켜야 하는 기사들은 누구보다 빨리 움직여야 한다. 남들이 출근할 때 퇴근하는 이들을 새벽에 실어나르는 대리기사들은 타인의 출퇴근길이 자신의 길이 된다. 돌봄노동자들 역시 타인의 시간에 자신의 시간을 동기화시킨다. 어린이집과 주간보호센터에 먼저 들러 가족을 맡기고 출근해야 하는 부모와 자녀의 출근길은 길고 분주하다.

그리고 이 모든 풍경의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는 이들, 인구도 버스도 소멸해가는 지방의 시민들이 있다. 지방의 도시에도 병목은 있지만, 인구 감소에 따라 대중교통은 줄어든다. 이들의 삶은 띄엄띄엄 울리는 학교 종처럼 버스 시간표에 따라 짜인다.

출근길의 풍경은 이걸로 끝이 아니다. 직장을 구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아직 출근길이 없다. 장애인들은 접근성이 낮은 대중교통에 좌절하며 출근길에 휠체어를 몰고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역 구내 엘리베이터에는 노약자들이 긴 줄에 서서 지하철보다도 느리게 지상으로 이동한다. 그 많아졌다는 이주노동자들을 출근길에 본 기억이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화면을 당겨보자. 긴 출근길이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연구들은 힘겨운 출근길에 고갈된 심리적 에너지가 강 상류에 방류된 폐수처럼 개인의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고, 정신적·육체적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고, 직장 내 인간관계의 긴장감을 높인다고 한다. 출근길은 또한 애써 쌓아 올린 동료 시민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다. 규칙 위반, 순서 무시, 차와 사람 간 거친 부대낌, 그리고 적절한 공권력의 부재는 ‘선량한 시민’을 전제로 설계되는 모든 정책의 효과를 의심하게 만들고, 규칙을 지키다 나만 손해 본다는 윤리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출근길은 생산성 감소, 오류 증가, 직무 몰입 저하, 결근 및 이직 증가 등 자본이 싫어하는 모든 현상의 근원이기도 하다.

출근길이라는 화두가 가벼워 보일지 몰라도 저출생, 기후, 인공지능 같은 화두만큼이나 보편성을 띤다. 일제히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하는 산업사회 노동자는 더 이상 표준이 아니지만, 정책은 지체돼 있다. 출근길에 소요되는 비용은 집단적 비용이지만 개인들이 불평등하게 지불한다. 출근길은 이 사회의 계급, 도시 집중화, 공공안전, 공적 신뢰 하락의 증상이 모두 기록돼 있는 사진첩이다. 영국 정부가 ‘고독 대응 장관’을 만든 것처럼, 통합적 대응이 필요한 현대적 정책 화두다.

문제는 정책 정보의 희소성이다. 출근과 관련된 세분화된 데이터, 그리고 출근길이 야기하는 사회적 비용에 대한 지식은 여전히 부족하다. 의지가 있다고 함부로 손댈 수도 없다는 의미다. 정책결정자들의 정책 감수성을 좌우하는 체험의 다양성도 확신하기 어렵다.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면 바로 출근길에 있을 것이다. 짧고 덜 피곤한 출근길 위에서 우리는 더 나은 시민이 된다. 출근길 정책은 노선과 도로를 넘어 인구·사회 구조, 도시 구조, 경제 구조 모두와 관련된 근본적인 난제다. 지금 당신의 출근길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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