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생성과 소멸] 〈3〉과학기술시대, 생성과 소멸은 무엇인가 (하)

2025-09-08

발버둥을 죽어라 쳐도 이 세상에서 살아서 나갈 방법은 없다. 세상은 죽음 앞에서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인간사에서 가장 큰 소멸은 죽음이고, 죽음은 인간이 이 세상을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출구다. 개별적이며 구체적이고 숙명적이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고통 그 자체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으깨지며 내장이 뭉개진다. 고통이 커지고 작아지기를 반복한다. 지치기를 거듭해 최소한의 힘조차 남지 않아야 비로소 죽음의 신이 손을 내민다. 고통스럽게 울며 세상에 왔으니 고통스럽게 가는 것이 뭐가 문제냐는 사람도 있다. 내가 죽을 때가 되면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와 기회를 갖고 싶다.

죽음을 비롯한 소멸은 그만큼 두렵다. 생성되어 존재하는 세상의 모든 것은 생명, 조직, 제도를 막론하고 소멸을 예정한다. 수많은 직업은 현금자동지급기(ATM), 키오스크, 인공지능(AI) 때문에 소멸한다. 낡은 상품은 신상품 때문에 소멸한다. 옛 산업과 기업은 신산업과 새로운 기업 때문에 소멸한다. 인간의 죽음을 이해한다면 소멸을 이해하기 쉬울까. 누구나 맞이해야 하는 죽음에서 소멸을 대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가치를 생성하는 혁신이 강력할 때에는 저항이 거의 없다. 너무 강력하면 혁신인지 아닌지 알 수조차 없다. 공동체에 미치는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 즉시 알기 어렵고 '나'라는 개인에겐 좋고 나쁜 점을 판단하기 쉽지 않다. 그저 좋게만 보인다. 전기, 가스, 비행기 같은 혁신이다. 그러지 못한 혁신은 필연적으로 저항을 맞는다. 그러한 저항을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 저항하지 않으면 소멸할 위기에 처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자동차가 처음 나왔다. 당시 말은 공간의 이동에 도움을 줬지만 참기 힘든 소음을 냈다. 배설물 처리가 힘들고 악취가 심했다. 마차가 늘면서 죽거나 다치는 인명사고도 늘었다. 사고를 보고 겁먹은 말이 또 사고를 냈다. 안전을 위해 사람만 다니는 인도를 만들었다. 그렇다. 자동차의 등장은 교통의 안전과 발전에 의미가 컸다. 그런데 마차를 몰던 마부들은 생계를 위해 반대시위에 나섰고 정부는 '빨강 깃발법(Red Flag Act) 만들었다. 빨강 깃발법이 뭘까. 자동차가 시내에 들어오면 사람이 빨강 깃발을 들고 차 앞에서 뛰면서 위험을 알려야 한다. 시내 최고속도는 마차보다 느린 시속 3.2㎞다. 차량고장에 대비해 조수가 탑승해야 한다. 결국 자동차산업은 영국에서 정착하지 못했다. 독일은 영국 전문가를 유치해 자동차산업을 성공적으로 키웠다. 자동차는 교통, 운송, 물류 혁신을 주도했고 생활방식과 산업구조를 바꿨다. 그렇다면 영국의 빨강 깃발법은 악법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자동차는 말에 비해 불편하고 위험이 컸다. 말과 달리 운전자가 핸들을 잡은 채 앞과 옆을 계속 봐야 하고 기름을 넣어야 한다. 속도가 너무 빨라 사람이 다치기 쉬웠다. 문제는 빨강 깃발법이 아니었다. 마차산업의 소멸과 자동차산업의 생성 사이에 조율하고 가치를 더할 능력 있는 사람과 절차가 없는 것이었다.

자율주행이 상업화되면 그 옛날 마부처럼 자동차 운전자도 일자리를 잃는다. 그 소멸은 정당할까. 철학자 필리파 풋이 제시한 트롤리 사례에선 운전자가 어느 방향으로 핸들을 돌리든 사람이 죽는다. 죽는 사람의 수만 차이가 있다. 자율주행에선 어떤 결정을 하도록 알고리즘을 짜야 할까. 논쟁을 한다고 답이 나오진 않는다. 그렇다고 자율주행을 포기할 순 없다. 매년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교통사고를 막는 길이다. 한 사람의 생명을 위해 다른 생명을 포기할 수도 없다. 인명을 중시하는 자율주행이야말로 도덕을 넘어 미래를 만드는 핵심원칙과 가치이기에 방향설정과 절차가 중요하다. 고민을 담은 알고리즘을 내놔야 한다. 생성이 단순 돈벌이가 아니라 소멸에 예의를 다하면서 가치를 창출해야 정당성을 얻는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창의는 어떻게 혁신이 되는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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