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암흑 물질은 우주의 유령이다.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암흑 물질의 ‘암흑’은 단순히 색이 까맣다거나 어둡다는 의미가 아니다. 빛을 방출하지도 흡수하지도 않으며, 빛을 매개로 하는 전자기력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암흑보단 투명한 물질에 더 가까울지 모른다.
현대 천문학에서 암흑 물질은 우주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암흑 물질 없이는 우주의 모습을 설명하지 못한다. 겉으로 보기에 우주는 텅 빈 세계처럼 보인다. 밝게 빛나는 별과 가스 물질만으로는 견고하게 자신의 형태를 유지하는 우주의 모습을 설명하기 어렵다. ‘보기보다 견고한’ 우주의 모습을 이해하려면,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중력을 발휘해 우주가 흩어지지 않게 지탱하는 거라 볼 수밖에 없다.
암흑 물질의 정체를 밝혀야 하는 책임은 이제 천문학자의 손을 벗어나, 입자 물리학자들에게 넘어갔다. 암흑 물질이 빛과 그 어떤 방식으로도 상호작용하지 않는 걸 보면, 적어도 암흑 물질은 일반적인 양성자, 중성자, 전자로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전혀 다른 기본 입자로 구성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거대 강입자 충돌기와 같은 입자 물리학의 최전선에서 유령을 좇는 거대한 의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된 입자들을 끊임없이 부딪치게 해 유령이 튀어나오기만을 기대한다. 아쉽게도 아직 유령 사냥 장치에는 아무런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더 거대한 강령술이라도 필요한 걸까? 고작 입자 둘이 부딪치는 것으로는 부족한 것일까? 입자 물리학자들의 실패가 이어지자 다시 천문학자들이 나섰다. 천문학자들답게 배포가 크다. 고작 입자 둘을 부딪치는 수준이 아니다. 아예 거대한 은하단 둘을 부딪친다. 물론 천문학자가 직접 충돌을 일으키는 건 아니다. 우주 공간에서 빠르게 부딪치는 두 은하단의 충돌 현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37억 광년 거리에 떨어진 일명 총알 은하단, 1E 0657-56이 있다. 이곳은 암흑 물질이라는 유령이 정말로 우주 전역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로 여겨진다. 암흑 물질을 부정하며 등장한 대안 가설에 가장 큰 절망을 안긴 현장이기도 하다. 최근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이 이 ‘암흑의 성지’를 다시 들여다봤다. 그리고 암흑 물질이란 유령의 정체에 대한 중요한 실마리가 새롭게 밝혀졌다.
은하단이 서로 충돌한다고 해도 그 안에 있는 은하들이 직접 부딪치는 일은 거의 없다. 은하단의 은하들은 굉장히 낮은 밀도로 멀찍이 떨어져 있다. 그래서 빠른 속도로 서로를 향해 돌진하던 은하단 속의 은하들은 그대로 서로를 통과한다. 충돌 순간, 살짝 가까이 서로의 곁을 스쳐지나가면서 속도가 조금 줄기는 하지만 큰 변화는 없다.
하지만 은하단에는 별빛으로 채워진 은하만 있는 게 아니않다. 은하와 은하 사이 거대한 공간에 퍼진 뜨거운 가스 물질들이 있다. 사실 은하단의 진짜 주인공은 은하가 아니라 가스 물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은하 전체 질량보다 가스 물질의 전체 질량이 더 많기 때문이다.
가스 물질은 충돌에 민감하다. 두 은하단이 부딪히면서 각 은하단이 품고 있던 가스 물질도 충돌한다. 그 순간, 은하들과 달리 가스 물질은 충돌 경계면에 높은 밀도로 반죽되면서 정체된다. 그로 인해 순간적으로 온도가 수백만 도까지 올라가는데, 그 강한 에너지는 엑스선 관측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총알 은하단을 찬드라 엑스선 우주 망원경으로 관측하면, 충돌 경계면을 따라 뜨겁게 달궈진 가스 물질의 분포를 볼 수 있다. 양 옆으로 충돌면을 뚫고 그대로 통과해 나아가는 은하들의 분포와 달리 엑스선으로 관측한 가스 물질은 선명하게 충돌 경계면에 유독 높은 밀도로 모여 있다.

이런 거대한 은하단을 관측하면 항상 따라오는 흥미로운 풍경이 있다. 바로 중력 렌즈가 만들어낸 허상이다. 은하단에는 보이진 않지만 막대한 양의 암흑 물질이 가득 차 있다. 그 전체 질량만큼 주변 시공간을 왜곡한다. 은하단 너머 배경 우주의 빛이 은하단 때문에 왜곡된 시공간을 가로질러 우리에게 날아오는 과정에서 빛의 경로도 휘어진다. 그래서 먼 배경 은하들의 빛이 곳곳에 둥글게 일그러지고 왜곡된 모습으로 관측된다.
은하단 일대에서 관측되는 중력 렌즈의 모습을 통해 얼마나 많은 암흑 물질이 어떻게 분포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앞서 2004년 천문학자들은 허블 우주 망원경으로 총알 은하단 주변의 중력 렌즈 이미지를 관측했고, 암흑 물질을 포함한 은하단의 전체 질량이 어떻게 분포해야할지를 파악했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사진 속에서 파랗게 표현된 것이 중력 렌즈로 파악한 암흑 물질의 분포다. 그 분포는 앞서 엑스선 관측으로 파악한 뜨거운 가스 물질의 분포와 확연하게 어긋난다. 충돌면에 높은 밀도로 정체되어 모여 있는 가스 물질과 달리, 전체 질량의 분포는 충돌면을 뚫고 나아가 양 옆에 두 개의 질량 덩어리가 분리되어 있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일반 바리온에 해당하는 가스 물질과 그 어떤 상호작용도 하지 않고 그대로 충돌 현장을 관통하는, 유령과 같은 암흑 물질이 정말 물질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다시 말해, 암흑 물질이 정말 ‘충돌하지 않는(collisionless)’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충돌면에서 잠시 정체되어 있다가, 뒤늦게 암흑 물질을 따라 뚫고 끌려가는 가스 물질의 분포가 마치 공기를 가로질러 날아가는 총알의 충격파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 현장을 총알 은하단이라고 부른다. 이름에 걸맞게 이곳은 암흑 물질의 가장 유력한 ‘스모킹 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암흑 물질이란 유령을 가정하는 대신, 중력이 작용하는 스케일에 따라 중력의 효율이 달라질 것이라는 가정 하에 대안 가설로 등장했던 수정 뉴턴 역학(MOND)이 있다. 대표적으로, 중력 가속도가 작은 스케일에서 실제 중력이 기존의 뉴턴 역학에 따른 중력보다 조금 더 강하게 작용하도록 수정해서, 은하 외곽의 별들이 어떻게 보기보다 더 강한 중력으로 붙잡혀 있는 것처럼 빠르게 돌 수 있는지를 설명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MOND조차 총알 은하단은 쉽게 설명하지 못한다. 총알 은하단이 보여주는 가스 물질 분포와 전체 질량 분포의 어긋난 정도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단순히 뉴턴의 중력 법칙에 사소한 수정 인자를 덧붙이는 것만으로는 이런 뚜렷한 차이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최근 제임스 웹은 이 암흑 물질 지지자들의 성지나 다름없는 총알 은하단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허블보다 훨씬 성능이 뛰어난 덕분에 기존 관측에서 보지 못한 더 작고 흐릿한 중력 렌즈까지 확인했다. 이번 연구에서 천문학자들은 총알 은하단에서 보이는 큰 버전의 중력 렌즈 이미지를 140개 이상 확인했다. 또 사이사이 숨어 있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중력 렌즈 이미지까지 모두 분석에 활용했다. 이런 다양한 스케일의 중력 렌즈 이미지를 모두 종합해서, 은하단 전체 질량 분포를 더 정확하게 파악하는 알고리즘을 활용했다. 이를 통해 관측된 모든 중력 렌즈 이미지를 설명할 수 있는 은하단 전체 질량 분포의 지도를 재구성했다.
이번 분석으로 재구성된 전체 질량 분포 지도를 자세히 보면, 왼쪽 부분이 훨씬 더 길게 타원 모양으로 찌그러져 분포한다. 이것은 지금의 총알 은하단을 만든 충돌 이전에, 왼쪽 부분의 은하단이 또 다른 충돌을 겪었을지 모를 가능성을 보여준다.
더 중요한 점은, 여전히 충돌 중인 각 은하단의 전체 질량 분포가 각 은하단이 품고 있는 별빛의 분포와 거의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점이다. 은하단 안에 있는 밝은 은하들, 그리고 은하와 은하 사이 공간에 퍼져 있는 ‘은하단 내 광(Intracluster light, ICL)’의 분포를 비교해보면, 중력 렌즈 이미지 분석으로 파악한 전체 질량 분포와 큰 차이가 없다. 이것은 암흑 물질 입자가 정말 다른 별이나 가스 물질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심지어 암흑 물질끼리도.
현재 천문학자들은 암흑 물질이 약하게나마 자기들끼리는 서로 부딪히고 상호작용을 하는 ‘SIDM(Self-interacting dark matter)’이라는 가설을 고민하고 있다. 기존의 차가운 암흑 물질 모델에서는 암흑 물질이 심지어 서로와도 아무런 상호작용하지 않고, 오직 중력에만 끌려다니는 중력 바보 유령 입자로 가정했다. 하지만 차가운 암흑 물질 모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우주론적 난제들이 있다보니, 암흑 물질이 자기들끼리는 일부 상호작용을 할 수도 있다는 가설을 고민한다.
그런데 정말 암흑 물질 입자가 상호작용을 한다면, 서로 어느 정도까지 접근해야 느낄 수 있을지 그 한계를 제시해볼 수 있다. 상호작용이 가능한 최소한의 단면적이다. 단면적이 크다는 건 암흑 물질 입자가 생각보다 민감해서 서로 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뜻이고, 반대로 단면적이 작다는 건 암흑 물질 입자가 정말 둔하고 소심해서 아주 가까이 지나가야 겨우 서로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번 제임스 웹 관측으로 확인한 전체 질량 분포와 은하단 내 전체 빛의 분포 사이에는 아주 미세한 어긋남만 있을 뿐, 사실상 큰 차이가 없는 분포를 설명하기 위해서 필요한 암흑 물질 입자의 단면적은 상당히 놀랍다.
계산 결과, 암흑 물질 입자의 단면적은 최대 0.5cm^2/g 수준에 머무른다. 자기들끼리 부딪치고 상호작용한다고 가정한 SIDM 모델에서 제시하는 유효 단면적 범위의 가장 작은 한계에 겨우 걸쳐 있는 수준이다. 평범한 수소 원자와 비교하면 단면적이 얼마나 작은지 알 수 있다. 수소 원자의 경우 상호작용할 수 있는 단위 질량당 단면적은 1.7×10^7cm^2/g이다. 훨씬 먼 거리에 떨어져 있어도 수소 원자는 서로 인기척을 느끼고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관측에 따르면, 암흑 물질 입자가 정말 SIDM이라면 정말 코앞을 스쳐지나가지 않는 한 웬만해서는 서로 인기척도 느끼지 못하고 거의 상호작용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사실상 암흑 물질 입자는 다른 일반적인 입자들뿐 아니라 자기들끼리도 서로 있으나마나한 ‘무심한 유령’이나 다름없다. 왜 지금껏 우리가 그들의 흔적을 포착하지 못했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아직 빈손인 입자 물리학자들에게 나름 위안이 되려나 싶다.
은하단 둘이 충돌하는 현장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밝혀낸 이번 연구 결과는, 실제 실험 현장에서 입자 둘을 충돌시키며 암흑 물질을 소환하려고 시도하는 입자 물리학자들에게 쓸모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대체 어느 정도로 수줍음이 많고,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입자를 찾아야 하는지, 대체 어느 수준까지 강입자 충돌기의 한계를 끌어올려야 하는지에 대한 뚜렷한 한계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 결과에서 제시하듯이 암흑 물질 입자의 단면적 단위에는 단위 질량당이라는, 즉 질량(g)으로 나눈 단위가 쓰인다. 아직 암흑 물질 입자의 정확한 질량을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 암흑 물질 입자의 단면적은 결국 그 입자가 얼마나 무거운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또 제임스 웹은 분해능은 뛰어나지만, 한 번에 볼 수 있는 시야가 매우 좁다. 그래서 이번 분석에서 천문학자들은 총알 은하단의 중심부만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곧 발사를 앞둔 차기 우주 망원경 낸시 그레이스 로먼은 시야가 훨씬 더 넓다. 앞으로 낸시 그레이스 로먼의 데이터까지 얹게 된다면 훨씬 더 넓은 영역에서 더 많은 중력 렌즈 이미지를 찾아내 더 광범위한 암흑 물질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쉽지만 아직은 우리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 암흑 물질이 필요하다. 여전히 하나의 유령이 우주를 배회하고 있다. 암흑 물질이라는 유령이.
참고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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