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 팬데믹 이후 폭발적으로 회복된 글로벌 관광 수요 속에서, 한국 관광산업은 여전히 구조적 한계에 머물러 있다. 글로벌 온라인 여행사(OTA)가 장악한 예약 시장, 분산된 정책 거버넌스, 인공지능(AI) 전환 속도에서 뒤처진 기술력은 국내 관광기업과 스타트업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이제는 규제를 넘어서 '혁신 중심 전략산업'으로의 도약이 필요한 때다. AI 시대에 걸맞은 산업 구조 전환 없이는 관광산업은 국가 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없다. 새 정부에 다음 세 가지 방향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AI 트랜스포메이션을 통한 디지털을 뛰어넘는 혁신이 필요하다. 관광산업은 아직 디지털 전환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머물러 있다. 하지만 이제는 단계를 뛰어넘어 곧바로 AI 전환으로 도약해야 한다. 콘텐츠 제작, 고객 응대, 맞춤형 일정 추천, 운영 자동화 등 대부분의 관광 업무는 이미 AI로 구현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대규모언어모델(LLM)을 비롯한 생성형 AI의 실질적인 활용도가 주요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이다. 현장에서는 보안이나 생소함 등을 이유로 도입을 주저하고 있으며, AI에 대한 학습과 실전 적용이 충분하지 않다.
정부는 LLM 유료버전 도입 장려, 관광 AI 솔루션에 대한 세제 지원, 관광업계 대상 AI 교육 프로그램 확대 등을 통해 AI 활용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관광기업이 AI와 협업하며 일의 시간을 줄이고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어야 진정한 혁신이 시작된다.
둘째, 데이터 거버넌스를 재정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관광 고객관계관리(CRM)와 개방형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AI는 데이터를 먹고 자란다. 그러나 국내 관광 산업에는 이를 뒷받침할 국가 단위의 CRM 시스템이 없다. 민간, 지자체, 공공기관이 각각 파편화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을 뿐, 통합된 플랫폼이나 AI 학습 기반은 부재하다.
정부는 '관광 빅데이터 허브'를 조성하고, 고객 동의 기반 마이데이터 체계를 관광 분야에 적용해야 한다. 공공과 민간이 함께 고품질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를 누구나 접근 가능한 형태로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AI가 작동하고, 민간 기업들이 이를 기반으로 창의적인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다.
셋째, 관광을 전략산업으로 격상해야 한다. 이는 공정한 생태계를 위한 구조 개편 작업이다. 한국은 수조 원의 세금으로 관광 인프라를 조성하지만, 외국인은 글로벌 OTA를 통해 예약하고 수수료는 모두 해외로 유출된다. 이 불균형을 방치한 채로는 관광 활성화도, 지역 균형도, 산업 고도화도 불가능하다.
관광산업을 문화·기술·외교를 아우르는 고부가가치 전략산업으로 명시하고, 이를 추진할 전담 조직이 필요하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 '관광청'을 신설하여 부처 간 조율과 전략 통합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동시에 국내 OTA와 스타트업이 글로벌 기업과 경쟁할 수 있도록 정책적 보호와 투자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
AI 시대는 인간의 노동과 삶의 시간을 바꾸고 있다. 주 4일 근무, 자율 근무, 원격 노동이 일상이 되며, 사람들은 더 많은 여유 시간과 이동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관광은 이 시간의 질을 책임지는 산업이다.
이제 우리는 '관광은 여가'라는 낡은 인식을 버리고, 관광을 삶의 확장이며 산업의 미래로 재정의해야 한다. 새 정부가 민간의 기술과 창의력을 신뢰하고, 전략적 산업 육성 의지를 분명히 한다면, 한국 관광은 다시 세계의 중심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정지하 트립비토즈 대표 jihaj@tripbto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