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11월 10일 밤 11시. 아이슬란드 남서부 항구 도시 그린다비크는 순식간에 유령 도시가 됐다. 오후 7시 지역 축구팀 그린다비크 선수들이 실내 훈련을 마친 직후였다. 이 지역에서는 수개월째 지진 활동이 이어졌고, 주민들은 이미 익숙해져 있었지만, 그날 밤은 달랐다. 4시간 후, 대피령이 떨어졌고 마을은 완전히 봉쇄됐다.
영국 매체 가디언이 당시 그린다비크 상황을 회고하며 쓴 표현이다.

가디언은 11일 “당시 축구장이 있던 실내 훈련장은 현재 지각 균열로 두 동강이 났다”며 “그린다비크의 야외 훈련장도 파괴됐다. 마을 전체가 갈라졌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하지만 믿기 힘든 일이 2025년 5월 10일에 벌어졌다”며 “그린다비크가 18개월 만에 홈구장인 스타카비쿠르뵐뤼르로 돌아왔다”고 덧붙였다.
구단 회장 하우쿠르 구드베르크 에이나르손은 선수 출신으로, 평생을 그린다비크에 바쳤다. 대피 직후 그는 “가족을 먼저 챙긴 뒤, 곧바로 축구팀을 구하기 위해 나섰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매일, 매시간 자연과 싸워왔다. 그러나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초기에는 수도 레이캬비크의 비킹구르 클럽이 그린다비크 선수단을 수용하며 훈련과 경기를 도왔다. 하지만 스폰서는 40%가량 줄었고, 지역 경제도 무너졌다. 에이나르손은 본업을 잃었지만, 그 시간 대부분을 구단 재건에 쏟을 수 있었다. 그는 “경찰, 정부, 전문가들과 끝없는 회의를 해야 했다”며 “경기장이 안전한지, 지반이 괜찮은지 매번 확인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 걸음 나아갔다가 두 걸음 뒤로 물러서야 했다”며 “오늘 공사하다가 내일 폭발 경보로 철수하는 식으로 말이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 4월 1일 용암이 마을 방향으로 쏟아진 마지막 화산 폭발 때 에이나르손은 “이제는 끝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다행스럽게도 용암은 경기장 직전에서 멈췄고, 전문가들은 경기장 사용 ‘허가’를 내렸다. 18개월 만에 치른 홈 경기에서는 1500명의 관중이 입장했고 음악 공연, 어린이 이벤트, 음식 부스까지 마련됐다. 에이나르손은 “그린다비크의 모든 것을 잃었지만, 우리에겐 축구가 있다”며 “그 자체가 희망”이라고 말했다.

현재 마을에 돌아온 가구는 약 40세대. 주택은 대부분 파손되거나 거주 위험 판정을 받았다. 가디언은 “축구단은 복구의 상징이자 선봉”이라며 “최근 지역 피자 가게에서 팀이 함께 식사하며 지역사회에 ‘정상화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위기감은 여전히 실존한다. 유니폼에 새겨진 구단 메인 스폰서는 현재 마을을 둘러싼 12m 높이 용암 방어벽을 건설한 업체다. 그린다비크는 아이슬란드 1부 리그 우르발스데일 복귀를 목표로 한다. 대부분 유소년 출신으로 꾸려진 젊은 팀이다. 가디언은 “이번 시즌 승격은 목표가 아니다”며 “그보다 중요한 것은 마을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에이나르손은 “우린 첫 걸음을 떼는 중”이라며 “큰 마음과 강한 의지로 나아간다면, 그린다비크는 반드시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가디언은 “그린다비크가 보여주는 축구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공동체 회복 그 자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