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2027년 레벨4 자율주행(완전자율주행) 상용화를 목표로 자율주행차 시범운행지구를 꾸준히 늘려왔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속 빈 강정’에 그치고 있다. 시범운행지구 10곳 중 4곳에서는 자율주행차가 다니지 않는 실정이다. 올해로 시범운행지구 도입 5년 차를 맞았지만 운전자 없이 완전 무인으로 자율주행차를 운행할 수 있는 지역은 전무하고 대부분 정해진 길만 오가고 있어 기술 고도화에도 한계가 명확하다는 평가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시범운행지구 지정 이후 1년을 경과한 34곳 중 자율주행 서비스를 운영하지 않는 지구는 14곳으로 전체의 41.2%에 달한다. 자율주행 인프라 조성 차원에서 2020년부터 시범운행지구는 매년 늘었지만 자율주행 사업자 유치, 예산 부족 등 문제로 무용지물로 전락한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각 지자체에서 의욕적으로 시범운행지구 운영 계획을 세우고 시작했지만 관련 사업자의 부재나 예산 문제로 진행조차 안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국토부가 지난해 시범운행지구 24곳을 대상으로 운영 성과를 평가한 결과 절반이 넘는 13곳이 낙제점인 D·E등급을 받았다.
시범운행지구를 둘러싼 복잡한 행정 절차, 규제는 민간 사업자의 참여를 꺼리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자율주행차 규제 특례를 적용하는 시범운행지구는 지방자치단체의 신청과 시범운행지구 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정부 승인으로 최종 선정된다. 민간 사업자가 시장 수요나 기술 테스트 여건에 기반해 시범운행지구 선정이나 운영 계획을 제안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얘기다.
자금력이 부족한 사업자들은 정부·지자체 주도로 마련된 시범운행지구에서 적자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시범운행지구에서 자율주행차를 통한 유상 운송은 운전자가 탑승하는 등 일정 조건에서만 제한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인건비 부담에 차량 유지·관리비, 보험료 등을 고려하면 비용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현재 전국 17개 시도에 지정된 시범운행지구 42곳 중 운전자 없는 완전자율주행이 가능한 지역은 단 한 곳도 없다.
자율주행 데이터 확보도 여의치 않다. 정해진 경로 없이 출발지와 목적지를 오가는 ‘도어투도어’ 방식이 가능한 시범운행지구는 9곳(21.4% 비중)에 불과하다. 나머지 33곳은 모두 버스처럼 정해진 노선을 따라 운행하는 방식이어서 다양한 도로·교통 환경에서 데이터를 축적하는 데 한계로 작용한다. 자율주행 선진국인 미국·중국이 특정 지역 전체에서 자율주행을 허용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업계에서는 우리나라도 미중처럼 자율주행 시험이 전면적으로 가능한 지역이 필요하다고 촉구한다. 서울시 등 주요 도심으로 시범운행지구 단위를 확장하고 민간 사업자 주도로 완전자율주행 유상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제도·행정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성흠제 서울시의회 의원은 “자율주행을 꽃 피우려면 사업자들이 마음껏 시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시범운행지구 운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안전 예방 등에 관한 지자체 책임을 강화하는 행정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