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한 서사로 되살아난 언어학

2025-11-04

다른 우주의 문법

백승주 지음·김영사·1만8800원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유언비어가 떠돌았다. 이에 일본인들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주고엔 고짓센(15엔 50전)’을 발음하게 해서 못 하면 가차 없이 죽였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순수한 모어’를 확립하고, 이에 맞지 않는 이들을 배제하고 학살하는 일은 수없이 반복돼왔다. 한 연구자는 4·3 제주학살의 잔인성에 제주어가 ‘육지인’들에겐 전혀 이해가 불가능한 외국어처럼 느껴졌던 것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모어 중심주의’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저자는 제주에서 나고 자랐고, 전남대에서 한국어교육과 사회언어학을 가르치고 있다. 이번 책에서 상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언어의 작동, 생태계, 발언, 형태, 관계 등을 종횡무진 탐사한다. 말을 다루는 말, 글을 다루는 글로서 읽는 맛 역시 놓치지 않았다. 그는 말한다. “언어는 공간이 없는 점과 같다…. 하지만 우리의 경험이 그 접속 지점과 만나는 순간, 이 점은 우주가 되어 이 세계를 만든다.”

공고 선생, 지한구

지한구 지음·후마니타스·1만6000원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잠만 자는 아이들을 세상은 ‘문제아’라 부른다. 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새벽까지 알바를 하며 밤을 새우고 학교에 와서 쪽잠을 잘 수밖에 없다. 많은 ‘비행’ 학생들은 약간의 관심만으로도 큰 변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사실 문제는 ‘학생’보다 ‘세상’이다. 취업률 때문에 안전을 생각하지 않고 실습을 보내는 학교, 노동에 정당한 대가를 부여하지 않는 사회가 학생들을 내몬다. 책을 읽고 나면 새삼 한 명의 교사가 얼마나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걸 한 명의 헌신에 맡겨서도 안 된다는 것 역시.

재활의 밤

구마가야 신이치로 지음·조승미 옮김·동녘·2만2000원

뇌성마비 장애 당사자이자 당사자 연구 분야의 대표적 연구자인 저자가 ‘손상된 몸’으로 어떻게 정상성·재활을 강요하는 세상과 함께 살아갈 것인지를 세밀하게 살핀 책. “줍고 주워지는 관계”망 속에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파치

소희 지음·이매진·1만8000원

2015년 해고 이후 9년간의 투쟁 끝에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현장으로 돌아갔다. 장기 투쟁을 버텨낸 힘은 무엇이었을까? 노조란 무엇인가? 저자는 투쟁의 곁과 속에서 노동자들의 삶을 듣고 썼다.

노년이란 무엇인가

박홍규 지음·들녘·1만9200원

올해 72세인 저자는 “청년 같다”, “50대처럼 보인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 그는 “노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고대부터 중세, 20세기까지 역사적으로 노년이 어떻게 정의돼왔는지를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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