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죄수 수출

2025-02-05

18세기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했지만 급격한 사회변화로 범죄자가 들끓으며 골머리를 앓았다. 영국 정부는 식민지였던 미국에 해마다 약 1000명의 죄수를 보냈다. 미국이 1776년 독립하자 영국은 유배지를 호주로 바꿨다. 당시 영국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호주로 떠난 사람이 약 16만명에 달했다. 이민자의 나라 호주 역사는 범죄자에게서 시작된 셈이다.

200여년이 흘러 다시 죄수 수출이 부활할 조짐이다. 지난해 영국 정부가 에스토니아로 죄수를 옮기려 한 것으로 드러나 세상을 놀라게 했다. 영국 수감자는 현재 8만9000명 수준에서 내년 10만명을 넘어설 전망인데 이미 교도소가 꽉 찼다. 이와는 달리 에스토니아는 낮은 범죄율로 교도소 절반이 텅 비어 있다. 영국에서 수감자 1명에 들어가는 연간 비용은 5만파운드로 동유럽국가 1만∼2만파운드보다 훨씬 많다. 영국은 세금을 아끼고 에스토니아도 수익을 챙길 수 있으니 서로 마다할 이유가 없다. 앞서 노르웨이와 벨기에도 네덜란드 교도소를 빌려 썼다. 이후 네덜란드는 교정시설·인력난에 처하자 발칸반도 소국 코소보의 교도소 감방 300실을 10년간 2억1000만유로(약 3107억원)에 임차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죄수 수출에 큰 매력을 느낀 모양이다. 얼마 전 트럼프는 “상습 범죄자라면 우리나라에서 쫓아내고 싶다”며 “막대한 비용이 드는 교도소 운영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말에 그치지 않았다.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그제 자국을 방문한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에게 미국이 추방하는 불법이민자뿐 아니라 미국 국적 범죄자들까지 교도소에 수감하겠다고 제안했다. 트럼프는 이 소식을 듣고는 “법적 권한이 있다면 당장 할 것”이라고 반색했다.

엘살바도르 교도소는 중남미국가에서도 인권 침해로 악명이 높은 곳이다. 부켈레 정부는 수년 전부터 갱단과의 전쟁에 돌입했는데 수시로 반바지 차림의 폭력배 수천명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공개해 물의를 빚었다. 인권단체에 따르면 최근 2년 새 교정시설에서 미성년자 4명 등 265명이 사망했다. 죄수 수출이 수감자의 재활 기회를 박탈하고 야만적인 인권유린으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주춘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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