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 칼럼니스트
놓아버렸다.
45년을 해온 교직을 놓아버렸다. 그동안 내가 가르친 제자들, 삶의 무늬가 새겨진 기억들을 함께 놓아버렸다. 이름을 놓아버리고 웃음을, 추억을 놓아버렸다. 그들과 함께 한 시간을 담은 졸업사진을 놓아버리고 사진 속의 이야기를 놓아버렸다. 소각은 완전한 놓아버림, 소멸이었다.
이 나이를 살아오며 인연의 끈으로 이어오던 그 많은 정과 사랑과 관계를 놓아버렸다. 깊었던 것, 얕았던 것, 맑은 영혼의 말, 어둠 속에도 주고받던 희망의 말 다 놓아버렸다. 믿음, 소망, 꿈, 이상 같은 것들 -기다림 속에 끌어당기고 싶던 그 모든 것들을 놓아버렸다. 놓아버릴 수 없게 에워싸던 미련의 어설픈 감정들, 그 편린까지도 다 놓아버렸다. 내 마음으로부터 놓아버렸다.
몇 권의 수필집과 시집을 놓아버렸다. 여섯 번째의 책을 상재하던 날, 그것들을 놓아버렸다. 읽는 이가 있거나 없거나 그건 내게서 떠나 있었다. 그들이 원하건 원치 않건 놓아버렸다. 한 줄 읽히지 않아도 그건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놓아버렸다.
두 아들도, 손자 손녀들도 놓아버렸다. 분가라는 새로운 울타리가 형성되면서 놓아버린 놓아버림이었다. 그들을 놓아버리지 않으면 가계가 끊어지고 역사가 멈추고 마는 이변이 올 것이라는 예견에서 놓아버렸다. ‘상선약수’(上善若水)인데, 같이 흘러야 한다. 흐르지 않으면 고인다. 흐르려면 놓아버려야 한다. 그래서 놓아버렸다. 아래로 흐르라 놓아버렸다.
‘방하착’(放下着)했다. 님의 계시였다. 한데 아니었다. 다 버렸는데 아니었다. ‘다 버렸다’는 그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
버렸지만 버리지 못한 것이다.
또 있었다. 도시의 숲을 지나 산그늘 내린 문간에 더니, 어둔 길을 불빛으로 걸어 한 걸음 먼저 와 있는 기척이 있다. 낯익은 얼굴인데 낯설다. 아는 체하려니 이상한 긴장이 나를 막아선다. 눈 시린 외경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가 없다.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훑어본다. 낯익다. 형형한 두 눈, 지고의 코, 수사에 간결한 입, 바람의 소리를 쫓는 큰 귀 모두 낯익다.
익숙한 사이. 정 섞이고 함께 울고 웃던 사이다. 당기고 밀고 밀면 당기던 사이다. 비켜서면 정면으로 얼굴을 디밀며 오던 그들. 사랑하던 그들이다. 한때 배척하려다 말고 혼자 흐느끼던,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 미워하려 해도 미워할 수 없는, 버리려도 버려지지 않는 그들. 남들이 업신여길 때 길항의 눈길로 맞서며 편들고 옹호하고 서러워하던 그들이다.
한평생을 바치리라 맹세해놓고도 허공을 향한 반향 없는 헛소리만 같아, 만져지지 않는 허방만 같아, 어제도 오늘도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사랑을 애소하는 그들. 쉬지 않고 지독히 앓아 온 내연의 짜릿한 연정. 아, 그들은 수필이었다, 시였다.
모든 것을 한순간에 다 놓아버렸지만 그들만은 놓지 못한다. 놓지 않았다. 불륜이 아닌데, 그것들은 내 가치의 전부인데. 가령 집착이라 하더라도 사랑하는 그들을 놓아버릴 수는 없다. 이제 내게 무엇이 남아 있으리. 돈, 지위, 힘, 쾌락. 다 놓아버렸다. 놓아버림, 다만 쓰는 것. 그 둘만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