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유달리 엄격하다. 어쩌다 이런 습관에 빠져들었을까. 타인을 대하듯 따뜻해야 하는데 오히려 자신의 잘못, 약함, 아픔을 향해 호통치거나 억압하기 바쁘다. 그런 나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해 본 적이 있을까. ‘내 인생에 사과한다.’는 그동안 나를 돌보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나에게 용서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의 도입부에서 “그 어느 누구도 완전히 그 사람 자신이 되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각자 본래의 자기가 되어 보려고 노력한다.”라 적고 있다. 헤세는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길(Der Weg zu sich selber)’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인생이라 말한다.
유서희 수필가는 자신의 아픔을 이해하고 자신에게 준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그것을 외면했던 자신에게 사과한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 너도 소중한 사람인 것을, 울어도 되는 것을, 아프다고 말해도 되는 것을 참으라고만 했다. 미안하다. 내 인생에 사과한다.”
작가는 수필가이면서 시낭송가이다. 한 편의 시(詩)로 확장되어가는 작가의 감성을 따라가다 보면 왜 그리 팍팍하게 나를 몰았는지, 무엇을 위해 열심히만 했는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작가가 들려주는 시 한 편이 가슴에 들어와 펼쳐지는 작가의 이야기는 어느새 뻣뻣하게 굳은 마음을 다시 말랑말랑하게 만든다.
“길은 내가 살아온 발자국이다. 부모님과 행복했던 유년의 기억, 친구들과의 추억, 결혼과 출산, 기쁨과 행복, 슬픔과 절망, 고통 등 문신들이 고스란히 찍힌 몸의 문장들이다. 마침표 없는 길 위에서 쉼표와 느낌표, 물음표를 번갈아 던지며 걸어간다. 뚜벅뚜벅”-<길을 묻다> 부분 p73
가던 길에 선다. 작가는 앞만 보고 걷기 바빴던 길 위에 멈춰서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보지 못한 것들을 둘러본다. 그리고는 말개진 얼굴로 독자에게도 묻는다. “그대, 길 잘 가고 있나요?”
혼자가 되고 싶을 때가 있다. 관계에도 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각종 디지털 기기는 시간과 공간을 잊은 채 혼자이기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자신을 보호할 완충거리 또한 점점 줄어간다. 오롯이 혼자인 시간,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집중할 수 있는 고독은 밖에서 다친 마음을 위로하고 힘을 내게 한다. 나를 담아 줄 빈 의자가 필요한 이유이다. 유서희 수필가가 혼자인 날이면 찾아가는 우가포 바닷가를 소개한다. 그곳엔 낡디낡은 빈 의자가 있다. 오랫동안 바다를 바라보며 묵묵히 있는 빈 의자는 작가에게는 사유의 집합체처럼 보인다.
“열심히 오늘을 건너온 그대를 위해 빈 의자 하나 내어드립니다. 수고한 ‘나’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주세요.” -<빈 의자> p111
우리는 살아가는 내내 몸과 마음에 새겨진 엄마의 흔적을 찾는다.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엄마를 만들었다는 유대 속담처럼 나이가 들어도 자식에게 엄마는 늘 절대적이고 영원한 존재이다. 작가는 봄날 오래된 지인으로부터 쑥 캐러 가자는 전화를 받는다. 언 땅을 뚫고 올라오는 쑥을 보며, 어린 시절 쑥 캐러 갈 때면 자주 듣던 엄마의 말이 떠오른다.
“지푸라기 속에 덮여서 자란 쑥은 키는 크지만, 영양가가 없고, 혹독한 겨울바람을 견디느라 땅에 바짝 붙어 있는 이 통통한 쑥이 좋은 것인 거라.” (…) 어쩌면 시련을 이겨낸 쑥처럼 당신의 딸도 억척스럽게 살아온 자신과 다르게 꿋꿋이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봄바람> p131
들판 저쪽에서 들리는 것 같은 엄마의 목소리는 시공간을 넘어 작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그 마음을 독자들에게도 살포시 전한다. ‘쑥차 드시면서 건강 챙기세요. 쑥 향이 참 좋아요.’ 봄 햇살 같이 따뜻하고 환한 작가의 미소가 절로 그려진다.
유서희 수필가는 밀양 태생이다. 수필가, 시인. 시낭송가이며 글꽃소리시낭송연구소를 운영하는 목소리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국제문예> 신인상으로 수필 등단, <시와 시학> 신인상으로 시인 등단을 했다. 한국 낭송명시집CD-48인의 대한민국 대표 시낭송가에 선정(2008)되기도 했다. 입체시낭송(2016), 동시낭송법(2002)을 개발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울산문인협회, 시와시학문인회, 울산여성포럼, 울산수필가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시와 사진, 수필이 어우러진 <내 인생에 사과한다>는 작가의 첫 감성 수필집이다.
박가화 수필가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