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못 본 척 넘어가도 되는 거 아니야?” “자기 문제도 아니면서 혼자서 뭘 어쩌려고….” 살다 보면 남들에게는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닌 거 같은데, 내겐 유독 중요하게 다가오는 일들이 있다. 더 이상 생각하지 말아야지 싶지만 자꾸만 그 일이 떠올라서 어쩔 줄 몰라 한다.
클레어 키건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배경은 1985년 아일랜드의 소도시다. 석탄 판매상으로 평범한 가정을 꾸려가던 빌 펄롱. 그는 마을에 있는 수녀원에 마음이 쓰인다. 미혼모나 고아 등을 수용한다는 그 수녀원에 한 젊은 여성이 강제 입소 당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다.
그러던 어느 날 석탄 대금 영수증을 들고 수녀원 건물에 들어갔다가 남루한 차림으로 마룻바닥을 닦는 여자아이들과 마주친다. “저를 밖으로 데려가 주세요.” 한 아이가 그에게 매달린다. “나는 그럴 권한이 없단다.” 빌은 등을 돌린다. 그때부터다. 알 수 없는 물음들이 마음을 짓누르기 시작한 것은. 빌은 아내에게 이 일을 전하면서 묻는다. “당신은 의문이 안 들어?”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 왜 마음에 걸리는 걸까? 건물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가 왜 궁금해지는 걸까? 그건 아픔이 아픔에 반응하기 때문 아닐까. 영화 중간중간에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 채 미혼모의 아들로 성장했던 빌의 어린 시절이 나온다. 마음을 심하게 다쳐본 사람은 비슷한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마음이 갈 수밖에 없다. 다른 이들은 가볍게 넘길 수 있어도 상처 있는 사람은 꼼짝 못 하고 그 자리에 붙들리게 된다.
그 사소한 순간들이 모이고 모이면 어쩔 수 없이 삶을 바꾸는 결심으로 이어지고 만다. 그런데 그 결심이라는 것도 그리 대단하거나 거창한 게 아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의 행동일 뿐이다. 하지만 그 사소한 행동이 사람을 살리고, 인생을 바꾼다. 새해에는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좋은 의미의 사소한 일들이 이어지기를 기원드린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