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망 난항…천연가스 발전 등 합리적 ‘전력 믹스’ 찾아야

2024-10-06

탄소중립·AI 시대, 전력 공급 난제 해결하려면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지난 8월 낸 보고서(The hard stuff: Navigating the physical realities of the energy transition)에서 물리적 가능성 측면에서 탄소중립을 위해 청정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따져 이에 해당하는 25개 분야를 추려서 발표했다. 전력 부문 6개, 수송 5개, 산업 5개, 건설 2개, 천연자원 1개, 수소 및 에너지 이동 3개, 탄소 및 에너지 감축 3개를 꼽았다. 그리고 부문별로 물리적 어려움의 정도를 최하 난이도(1)부터 최고 난이도(3)까지 3단계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이중 전력 분야에서는 재생에너지의 변동성 해결, 새로운 전력 공급 시스템 확대 등이 물리적으로 해결이 어려운 3단계로 평가됐다. 유연한 전력 수요와 재생에너지 생산을 위한 부지 확보, 전력망 연결, 원전을 비롯한 청정하고 신뢰도 높은 전원 확보가 2단계로 어려운 점으로 지적됐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

서해·남해안과 국토 남단 유리

산업 전력 수요는 수도권 집중

주민 반발, 송전망 구축 어려워

지역의 전력소매시장 열어주고

수요자 자가 발전 가능케해야

물리적으로 어렵다고 열거한 내용의 대부분은 현재도 매우 많은 난관에 직면한 태양광과 풍력 발전 증가를 통한 전력부문 청정화가 앞으로도 해결하기 어렵다는 한결같은 내용이다. 특히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한 유연한 발전원과 백업 발전원, 에너지 저장 장치, 송전망 증가 등은 전력 수요 증가보다 2~7배 빠르게 증가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그리고 산업 분야에서는 주로 의식주와 직결된 철강과 시멘트, 플라스틱 공급 등의 탈탄소화 가능성이 3단계에 해당해, 탄소중립이 어려운 난감축산업임을 밝히고 있다. 결국 산업 분야에도 청정에너지 공급이 가능하려면 청정 전기화가 필수고 이를 달성하는 것은 재생에너지의 난제와 연결돼 있다.

사회적 여건이 발전소 위치 결정

이러한 난제를 한국의 상황에 적용하면 과연 어떠한 결과가 나올까. 우리나라의 지리적 특수성과 경제·산업·사회 구조 변화, 현재 전력 시장의 난맥상과 결합하면 아마도 해결이 불가능한 난이도가 나올 듯하다. 우리나라의 지리적 특성상 태양광 발전 시설은 주로 남쪽에 위치하고 풍력도 서해안이나 남해안 쪽이 발전에 유리한 지역이다. 청정한 재생에너지 발전은 주로 국토 남단이나 해상이 될 것이고 주요 수요처는 모두 수도권에 밀집돼 있다. 수요처와 공급처의 지리적 미스매치다. 물론 재생에너지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재생에너지가 국토의 지리적 위치와 환경에 따라 발전량이 제한되는 발전원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또한 원전도 동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건설되고 있다. 새로운 원전을 건설하면서 신규 지역 주민을 설득해 부지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존 지역에만 계획할 수 있는 실정이다.

사회적 여건이 결국 발전소의 위치를 결정하는 구조로 돼 있다. 어느 지역에 가더라도 주민의 반대를 무마하기 위한 보상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해상 풍력은 어민을 설득하고 보상해야 하고, 원전도 지역 주민을 설득하고 보상하는 한편 사용후핵처리 시설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탄소중립의 핵심은 청정한 전기에너지 발전소를 충분히 건설하고 송전망을 통해 전기가 흐르게 하는 것이다. 모든 내륙 지역을 거쳐서 송전망을 건설하고, 심지어 해저 케이블을 통해 전기를 이송하자는 아이디어도 결국 해안 지역 주민의 오해를 불식하고 보상을 통해 진행해야 한다. 한국은 이미 전력 수급의 불균형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물리적·지리적 환경에 처해 있고, 송전망 건설은 최상의 난이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공급이란 난제

산업 구조 측면에서 보면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 비중이 30%를 차지하고 동시에 막강한 경쟁력과 효율성을 지닌 제조업 강국이다. 주요 제조업체가 에너지 다소비 기업이지만 동시에 가장 깨끗하게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대부분이다. 1원의 부가가치를 생산할 때 온실가스 배출을 가장 저감하는 방식으로 생산하는, ‘원 단위 배출 효용성’이 가장 좋은 국가다. 중국 등 다른 나라 제조업에 비해 양심적인 생산 방식을 구축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처럼 경쟁력 있는 제조업을 유지하고 이들 기업이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가적 과제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도체와 자동차 등 첨단 산업 공장에 경제적이고 안정적인 전력을 24시간 365일 공급해야 할 의무가 국가에 있고, 지금까지 전력시스템은 그러한 임무를 잘 수행해 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전기가 산업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특히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전기를 공급할 방안이 난제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와 한국전력은 용인에 전력을 공급할 방안을 3단계로 생각하고 있다. 1단계를 3GW의 가스발전소를 통해서 시작하고, 2단계는 동해안의 원전 전기를 동해안 고압직류 송전망을 구축해 끌어온다. 3단계는 남해안과 서해안의 재생에너지를 해저 고압직류망으로 끌고 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송전망 건설은 난이도가 가장 높은 물리적 허들이고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과연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전기를 24시간 365일 끊어지지 않게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송전망 구축과 전기 공급이라는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과 물리적 시간, 그리고 건설 경험이 풍부한 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현재 이 3가지가 모두 어려운 상황이다.

우선 한전은 재무적으로 200조원이 넘는 부채를 짊어지고 있고, 이자 비용만 매년 4조원이 넘는다. 이제는 감당이 안 되는 수준이다. 한전에만 이 문제를 맡겨둬서는 안 된다. 정부가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을 통해 이를 해결하려 하지만 비용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그런 만큼 투자 용의가 있는 발전사나 투자사 등과 손을 잡고 송전망을 건설해야 한다.

전기 품질이 산업 경쟁력 좌우

만약 이러한 방안을 사회적으로 수용하기 어렵다면, 그다음 고려할 방안은 송전망의 제한으로 수요가 없어서 발전 물량을 버려야 하는 지역에 전기 수요자가 옮겨갈 수 있는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이다. 즉 지역 전력소매시장을 열어서 전기 다소비 소비자가 발전량 과다 지역으로 이전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현재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을 통해 추진하려고 했던 궁극적인 목표는 시장을 통한 전력 수급의 미스매치 해결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에너지저장장치(ESS)나 가상발전소(VPP) 등만 사업이 가능한 것으로 돼 있기 때문에 대규모 수요처가 움직이기 어렵다. 게다가 24시간 전기를 공급받아야 하는 업체는 전기 요금이 충분히 낮아져야만 이전할 유인이 있다. 과연 다수의 인력이 거주할 만한 인프라를 갖추고, 전기 요금까지 싼 비수도권 지역은 어디일까. 분산화도 충분한 가격 인센티브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다음으로 가능한 방법은 결국 수요자가 자가발전을 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모든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반대를 뚫고 천문학적 자본을 투자해야만 가능한 전력망을 통한 전기 공급, 전기 수요자의 분산, 거기에 자가발전을 통한 자구책까지 필요한 세상이 돼 버린 것이다.

더 나아가 이제 우리는 인공지능(AI)을 일상적으로 활용하고, 데이터센터에 수많은 데이터를 저장하고 AI 반도체로 처리하는 세상에 살아야 한다. 그러자면 전기는 더욱 많이 필요해질 것이고 24시간 끊임없이 전기를 사용해야 하는 산업체가 늘어날 것이다. 결국 전기의 품질이 산업 경쟁력, 더 나아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게 된다는 얘기다.

천연가스 발전, 지역에너지 사용 가능

결국 송전망 추가 건립을 피할 수 있는 발전시설이 불가피하다. 지역 에너지를 바로 그 지역에서 사용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건설 공기가 짧고 산업체 바로 옆에 건설이 가능하며 유연하게 운전도 가능한 천연가스 발전소가 전력 공급에 적절히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전력 수요 급증과 전력 설비 노후화라는 상황에 직면한 미국에서 지역과 무관하게 천연가스 발전소 건설 의사가 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독일과 일본도 전력 부족에 대비해 천연가스 발전을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2024년은 세계적으로 천연가스 발전소 건설 의향이 최고조에 달하는 해가 될 것이다. 탄소중립으로 가야 하지만 에너지 전환을 이행하는 과정에 천연가스 발전소가 필수적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최근의 에너지 비용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24시간 발전이 가능하고 작은 발전기는 유연한 전력 자원으로 충분히 활용 가능하다. 장기적으로는 노즐과 연소기 교체만으로 수소 발전소로 전환할 수 있는 만큼 청정한 발전원으로 진화도 가능하다. 게다가 가스 터빈과 수소 터빈은 충분히 우리가 기술을 선도할 수 있다.

한국은 제조업 중심으로 경제를 일으켜왔고, 수출로 외화를 벌어서 먹고 살아왔다. 탄소중립이라는 거센 물결과 AI 시대에 급증할 전기 수요를 예상한다면 제조업의 효율적 생산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원 공급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현실을 딛고 설 수 있어야 미래 준비도 가능해진다. 이제라도 합리적이고 실현가능한 전력 믹스를 통해 전력시장의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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