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4일 저녁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대표적 오페라 극장인 펠젠라이트슐레. 독일어 오페라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작곡가 바그너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공연이 열렸다.
이날의 주인공인 네덜란드인은 한국의 바리톤인 안민수(40)였다. 길고 어렵기로 유명한 첫 아리아 ‘얼마나 자주 깊은 바다의 바닥으로’를 안정적으로 소화한 그는 현대적으로 연출된 이 오페라에서 강한 존재감을 보여줬다. 중심이 단단하고 품위 있는 소리를 가진 안민수는 약간의 코믹함이 가미된 연기까지 소화하며 큰 박수를 받았다.
바그너는 다른 오페라에 비해 아시아 성악가들의 미개척지다. 큰 성량과 지구력, 또 독일 언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2016년 빈에서 오페라 가수로 경력을 시작한 안민수의 바그너 출연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공연 후 만난 그는 “늘 꿈꿔오던 바그너를 부를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했다.
주립극장인 란데스 테아터가 주최한 이번 공연에서 주역으로 선발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추천을 받은 성악가 20여명이 오디션에 참여했다. “극 중에서 네덜란드인이 불안정하고 힘든 상황에 있잖아요. 그래서 약간 미친 사람처럼 하고 오디션에 참가했어요.” 그는 머리를 올려붙이고 노란 큰 안경을 쓰고 오디션에서 노래를 불렀다.
“어차피 잘 안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미 바그너 오페라의 경력을 가지고 있는 가수들이 많이 왔으니까요. 아직 바그너 주역을 하기에 나이도 조금 부족하고요.” 이런 생각이 오히려 오디션에서 그를 자유롭게 했다. “정말 신나게 불렀어요. 바그너는 물론 모차르트와 라흐마니노프까지 불렀어요. 마음이 가벼워서 잘했던 것 같아요.”
그는 지난달 19일 개막한 이번 작품에서 호주의 베이스 바리톤 데릭 웰튼과 더블 캐스팅됐다. 베를린·빈 등에서 바그너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물론 ‘로엔그린’ ‘지크프리트’ 등에 여러 번 출연했던 바그너 가수다. 안민수는 24일 공연과 더불어 마지막 무대인 이달 11일의 공연을 맡았다.

난관은 공연을 앞두고 작품을 준비하면서 시작됐다. “오전 4시간, 오후 4시간씩 리허설을 하는데 몸을 많이 쓰도록 한 연출도 어려웠고 모든 노래를 다 소화해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것이 정말 힘들었어요. 독일어도 특별히 정확해야 했고요.”
함께 하는 성악가들은 쟁쟁했다. “같이 출연한 달란트 역의 베이스는 키가 190㎝가 넘어요. 많은 성악가가 헤비급 챔피언 같은 체구에 목소리도 그런 데다가, 무대를 앞두고 긴장도 별로 안 하더라고요.” 안민수는 “전력을 다해 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동선을 꼼꼼히 외우고 연습할 때마다 모든 힘을 쏟았다.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더라고요. 일주일쯤 지나니 제작진이 모두 제 이름을 불러주고 동료로 인정해주기 시작했어요.”
안민수는 뒤늦게 노래를 시작해 뚝심으로 경력을 끌고 온 성악가다. “고등학교 때 갑자기 노래를 하고 싶었고, 경제적으로 힘들어 굶어가며 노래를 했어요. 저를 자유롭게 해주는 노래를 어떻게 해서든 잘하고 싶었어요.” 군대를 다녀온 후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을 떠나와 빈국립음대에 합격했고 콩쿠르와 빈·그라츠·잘츠부르크 오페라 무대에서 경력을 쌓은 후 빈국립음대 최초의 동양인 강사라는 기록도 세웠다. 2023년에는 JTBC ‘팬텀싱어4’에 출연해 화제가 됐다.
성악을 시작하면서 품었던 바그너에 대한 꿈이 이제 시작됐다. “바그너는 대본과 음악을 직접 썼죠. 음악과 언어가 빈틈없이 맞아 떨어져요. 독일의 시를 사랑하는 저로서는 희열을 느끼죠. 그렇게 바그너를 사랑하게 됐어요.” 그중에서도 네덜란드인은 그에게 꿈의 배역이었다. 네덜란드인은 순수한 사랑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는 저주를 받은 인물. 바그너는 네덜란드인을 둘러싼 거대한 자연과 운명의 힘을 그려냈다.
“꿈꿔왔던 역할을 처음 해보니 이 부담을 매번 안고 살아야 한다는 걸 상상할 수 없긴 해요. 그래도 몇 주 동안 공연을 연습하면서도 많이 성장했다는 것이 느껴져 바그너 공연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란데스 테아터의 시즌 공연 중에서도 이번 무대는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시내에 위치한 란데스 테아터 대신, 잘츠부르크 축제의 주요 극장인 펠젠라이트슐레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펠젠라이트슐레는 승마학교로 쓰이던 곳을 개조한 독특한 공연장. 특히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트랩 대령과 청중이 ‘에델바이스’를 불렀던 곳으로 유명하다.
안민수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욱 강렬한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무대에서 악역을 맡을 때 강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성악가다.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알베리히나 ‘파르지팔’의 암포르타스를 꿈꾼다”는 그는 “언젠가는 ‘리골레토’의 리골레토나 ‘오텔로’의 이아고 같은 역할까지도 섭렵하려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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