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 국정기획위원회(국정위)가 정부조직 개편안과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채 14일 공식 활동을 마쳤다.
이한주 위원장은 이날 해단식에서 “국정위가 만든 국정운영 계획은 각각 어디서인가 유지되고, 관리되고, 그대로 시행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위원장의 말처럼 국정위가 만든 계획이 실제 실행으로 옮겨질지는 미지수다. 당장 이재명 대통령이 전날 국정위 국민보고대회에서 “국정위 안이 정부의 확정된 정책안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국정위는 지난 6월 16일 이 대통령의 지시로 출범한 뒤 기획위원 55명, 전문위원 100명, 자문위원 150명 등이 배치돼 이재명 정부의 밑그림을 그렸다. 이 과정에서 전체회의 8회, 운영위원회 36회, 분과위원회 700여회, 업무보고 300여회 등이 이뤄졌다. 기획위원 34명, 전문위원 68명, 보좌역 12명이었던 문재인 정부 국정기획자문위원회보다 규모도 컸고 공개된 활동 건수도 많았다. 군 부대 등 현장 방문을 포함한 간담회도 112차례나 개최했다.
부처별 업무보고 땐 “새 정부 국정철학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취지로 공개 질책하며 공직기강 잡기에도 적극적이었다. 이 위원장은 “출범 이후 산더미처럼 쌓인 보고서에서 문제점을 찾아 개선 방안 등을 이재명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반영하고자 모든 위원들이 밤낮 없이 달려왔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국정위는 전날 국민보고대회에서 국정과제가 123개, 실천과제가 564개에 이른다고 발표하면서도 세부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123개 국정과제의 내용은 ‘아이 키우기 좋은 출산·육아 환경 조성’, ‘세계에서 AI(인공지능)를 가장 잘 쓰는 나라 구현’ 등 원론적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대선 기간 더불어민주당이 공개한 정책 공약집과 내용 면에서 유사했지만 공약집에 명시된 세부 과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 분리나 기후에너지부 신설 등 정부조직 개편안도 대통령실에 비공개로 보고했을 뿐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놓지 않았다. 존속기한(60일)도 20일 범위 안에서 연장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앞서 문재인 정부 국정기획자문위(자문위)는 이번 국정위처럼 60일간의 활동을 마친 2017년 7월 19일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국정과제별 과제 목표, 주요 내용, 기대효과를 상술한 자료를 공개했다. 50일의 활동기간이 부족해 10일 더 연장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스스로도 취임 직후 “대선 공약 내용을 바탕으로 국정방향과 목표를 수립하고 이를 이행할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의욕적이었다.
당시 위원장은 부총리와 원내대표를 지낸 4선 현역 의원이던 김진표 전 국회의장이 임명됐다. 문 전 대통령은 자문위 해단 하루 전 기획위원 전원과 청와대에서 오찬하며 계획안을 먼저 보고받고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애프터서비스까지 함께 한다는 자세로 임해주시기 바란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공식 보고 행사는 엿새 뒤에 열렸다.

문재인 정부 자문위에서 일한 한 여권 인사는 “국정위의 역할과 기능은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달라진다”며 “대통령이 국정위를 상설기구로 두면서 계속해서 정부 정책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도록 할 수도 있지만, 변화하는 국내외 정세에 적응하는 데 문제가 없게끔 하나의 참고 자료로만 보겠다고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여권 핵심 관계자도 “문재인 정부 때는 대통령의 뜻에 따라 자문위가 어느 정도 재량권을 갖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대통령실의 그립이 더 센 탓에 상대적으로 김이 빠진 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국정위 관계자는 “564개 실천과제는 합하면 1700페이지가 넘는다”며 “문재인 정부 때도 각 과제당 한 페이지 분량의 설명자료를 낸 것이지 실천과제를 공개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국정위 해단 전 기획위원단과 오찬 자리를 마련하려고 했으나, 휴가와 한·일, 한·미 정상회담 일정에 밀려 무산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