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붙어"보다 "충전해"…엿 사라진 요즘 수능 선물 보니

2024-11-10

10년 전만 해도 수능 전주엔 수백명이 다녀갔는데 지난해엔 한 달 동안 딱 6명 왔어. 올해는 아예 내놓질 않았지 뭐.

2025학년도 대입 수능을 나흘 앞둔 주말인 10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월드컵시장 내 전통제과점 사장 홍선식(59)씨가 냉동고에 넣어둔 엿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시장은 이날 화창한 날씨에 주말 나들이를 나온 가족들과 관광객으로 북적였지만 전통제과점과 떡집 앞은 비교적 한산했다. 홍씨는 “이젠 ‘수능 엿’을 찾는 사람들도 없는 데다 날이 더워 엿들이 엉겨 붙는다”며 “수능용 갱엿 대신 어르신들이 찾는 호박엿만 소량 냉동고에 얼려뒀다”고 말했다. 망원시장에서 한과, 뻥튀기 등을 파는 박모씨도 엿 장사를 접은 지 5년이 다 돼간다. 그는 “어르신들께 수험생 손주한테 엿 선물을 하시라 권해도 ‘현금을 더 좋아한다’며 손사래를 치신다”고 했다.

떡 가게 매대에도 수능이 대목인 흰 찹쌀떡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떡집 직원 염모(75)씨는 “올해부터 찹쌀떡은 팔지 않기로 했다”며 “비싼 포장·고명값을 최대한 낮춰 한 세트 1만2000원에 팔아도 손님들은 비싸다며 안 사 간다”고 말했다. 이 가게에서 50여 미터 떨어진 또 다른 떡집에선 ‘수능 대박 기원 찹쌀떡 주문받아요’ 팻말을 걸어놓고 있었지만 사장 장모(24)씨는 “올해 주문이 아직 한 건도 안 들어왔다”며 “수험생보다도 외국인들이 더 많이 사 간다”고 멋쩍어했다.

전통적인 수능 선물로 꼽히는 찹쌀떡·엿·휴지·포크의 인기가 떨어지고 대신 초콜릿·현금·기프티콘 등 실용적인 선물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고3 수험생 학부모 장모씨는 “초콜릿·쿠키·마카롱 등 당 충전할 수 있는 디저트류가 선물로 들어왔다”며 “찹쌀떡이나 엿은 선물받는다 해도 쿠키와 한 세트에 들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수능 끝나면 사고 싶은 거 사라며 상품권형 기프티콘이나 현금을 카카오페이로 보내주는 분들도 꽤 있다”고 덧붙였다.

집중력에 도움이 된다는 고급 영양제나 체력 보충제도 인기다. 각종 맘카페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수험생 영양제 선물 추천해달라’는 다수의 글과 함께 수험생이 수능 날 오전·오후 나눠 먹으면 좋은 ‘영양제 시간표’가 공유되기도 했다. 오전에 일어나면 피로회복 고농축 앰플제와 비타민B를 먹고, 점심 뒤엔 카페인환과 아미노산 영양제인 아르기닌을 먹는 식이다. 양천구 목동 백화점에서 영양제를 판매하는 한 직원은 “‘비타민계 에르메스’라고 불리는 멀티비타민은 10만원이 넘어가도 곧잘 팔린다”며 “꼭 수험생이 아니라 수험생 부모들도 같이 먹을 수 있어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수험생에게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명문대 굿즈도 선호도 높은 선물 중 하나로 꼽힌다. 12월 입대를 앞두고 휴학한 서울 소재 대학생 김모(21)씨는 지난달 동생 김모(18)군의 수능 선물을 사기 위해 한 달 만에 학교를 찾았다. 그는 “학교 마크가 그려진 연습장을 세 권 사줬다”며 “수능을 앞두고 막바지 준비에 한창인 동생에게 가장 실용적인 선물이 뭘지 고민하다 동기부여도 될 것 같은 선물을 골랐다”고 말했다. 유통계도 각 대학과 손잡고 수능 마케팅에 나섰다. CU는 서울대 마크가 그려진 손목시계 굿즈와 초콜릿이 함께 구성된 ‘서울대 기획세트’를 내놓았고, 연세유업은 연세대 과 점퍼 모양의 키링이 담긴 ‘연세우유생크림빵’ 시리즈를 출시했다.

이런 현상은 의미보다 실용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젊은 층의 가치관이 반영됐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대학내일의 트렌드 분석 서비스 ‘캐릿이 2021년 전국 고등학생 2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34.5%가 찹쌀떡·엿을 ‘가장 받기 싫은 선물’로 꼽았다. 반면 ‘수능 응원 선물로 가장 받고 싶은 것’으로는 현금·외식·초콜릿 등 디저트 순으로 선호도가 높았다.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는 “받는 사람 입장을 고려해 실용성이 있고 오래갈 수 있는 선물을 하고자 하는 심리가 반영된 것”이라며 “(시험에) 붙으라는 의미인 찹쌀떡 선물 등 한국의 미풍양속이 젊은 층 사이에서 점차 사라지는 건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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