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다문화 장병’
과거엔 외모 다르면 징집 제외했지만
지금은 한국 국적자 누구나 병역의무
2030년엔 다문화 출신 1만여명 전망
병영 내 다양성 인식 수준은 아직 낮아
군, 차별적 인식 개선 교육콘텐츠 마련
할랄푸드·채식 등 ‘대체식’ 제공하기도
미국는 특정 종교 맞춤형 전투식량 보급
인종·문화 고려해 친화적 지휘관 임명
이스라엘선 종교 생활 등 선택권 다양
내년이면 한국도 다문화 국가에 진입하게 된다. 이주 배경 인구가 총인구의 5%를 넘어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국적을 가진 다문화 가정의 자녀는 한국 남자들처럼 병역의무를 지게 된다.
인구 절벽으로 인한 병력 부족 문제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2010년 병역법 개정으로 다문화 가정 자녀에게도 병역의무가 부가됨에 따라 다문화 가정 출신 장병의 입대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4일 국방부 등에 따르면 2030년에는 전체 장병 중 다문화 장병이 1만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더는 피부색이, 사용하는 언어가 같은 장병들로만 부대가 구성될 수 없다. 북한이탈주민의 자녀도, 이슬람 문화권에서 온 장병들도 우리 군의 미래를 책임질 중요한 자원이기에 군 내 다양성을 확립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2030년 다문화 장병 전체 5%
앞으로 병역자원의 상당수는 다문화 장병이 될 전망이다. 홍숙지 한국국방연구원(KIDA) 국방인력연구센터 연구위원이 지난 1월 발간한 국방논단 ‘군 다문화 정책발전 방향에 대한 제언’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에는 1만여명에 달하는 다문화 장병이 입대할 것으로 예측된다. 2030년부터 현역 가용자원 대비 다문화 장병 입영 비율은 5%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2010년대에 다문화 장병은 51명에 불과했고 2022년까지 다문화 장병 입영 비율은 1%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각 부대에 다양한 문화권에서 자라온 장병들을 마주하게 된다는 의미다.
다문화 장병이란 외국인 귀화자, 북한이탈주민의 자녀, 국외 영주권 입영 장병 등이다. 과거에는 외관상 명백한 혼혈인의 경우 제2국민역으로 편성해 현역이나 보충역 징집대상에서 제외됐으나 2010년 병역법 개정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한 사람은 인종·피부색에 관계없이 모두 병역의무를 지게 됐다. 다만 귀화자는 의무가 아닌 희망하는 경우 현역이나 사회복무요원 등의 형태로 복무할 수 있다.
국방부는 모든 장병을 대상으로 다문화 수용성을 증진해 차별 없는 병영문화 정착 및 군의 전투력 강화를 목표로 다문화 장병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다문화 장병 정책의 핵심은 장병 본인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문화 장병에 대한 지원정책보다는 모든 장병에게 다양성의 가치를 이해하고 다양한 배경을 지닌 장병 간 긍정적인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2016년 이후에는 다문화 장병을 식별하거나 현황을 파악하지 않고 있다.
◆다문화 장병 및 다양성 인식 제고해야
다만 여전히 군 내 다문화 장병에 대한 인식은 낮은 편이다. KIDA 홍 위원이 간부·장병 3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간부의 15%가 여전히 다문화 장병이 입대하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또한 다문화 장병에 대해 공식적으로 식별 활동의 금지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군 간부가 과반을 차지했다.
다만 다문화 장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낮고 군 생활 중 다문화 장병을 직접 경험할수록 더욱 긍정적인 인식을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종교활동이나 대체음식 제공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인식이 발견돼 인식 제고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국방부는 모든 장병을 대상으로 다문화 장병에 대한 차별적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콘텐츠를 제공해 오고 있으며, 2025년에는 한부모 가족 등 현 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하기 위한 ‘표준교안’을 기획, 제작 중이다.
식문화, 종교 등에서 다양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조치는 취하고 있다. 국방부도 2021년부터 무슬림, 채식주의자 등 급식소수 장병들의 현황을 파악하고 대체식을 제공해 오고 있다. 국방부 급식지침에는 특정 종교로 인한 식사가 제한되는 장병 등에 대해서는 김, 야채, 계란프라이 등의 대체 품목을 매 끼니 제공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필요하면 해당 병사의 기본급식비를 현금으로 배정해 무슬림 장병의 경우 할랄푸드를 구매하거나 돼지고기 대신 닭고기 또는 양고기 가공식품 등 필요한 품목을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소수종교의 신자인 경우도 군종장교의 지도 아래 부대시설을 이용하거나 민간 종교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실제 부대에서 다문화 이해 교육이 반기마다 1회씩 실시하도록 규정돼 있으나 실제 부대에서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경우도 많아 병사들의 교육 경험률이 저조한 것으로 조사됐다. 다문화 교육 시행률 제로를 위한 점검체계 구축과 군에서 다문화 가정 초청 행사 및 소수민족 관련 행사 및 활동 등을 실시하고 장병들이 이러한 활동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일반 장병들의 다문화 수용성 제고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차용환 육군사관학교 국어철학과 철학 교수는 ‘다문화 군대 대비 국방정책 발전 방안, 다양성 관리 차원에서’ 논문을 통해 “외견상 구별되지 않는 한국인 부모에게 자란 다른 문화를 가진 인원도 ‘다문화 장병’”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990년대 이후 한국인 자녀들의 조기유학은 급속히 증가했고 이런 요인으로 외국문화에 더 익숙해진 인원들은 다문화 장병으로 분류되어야 함에도 다문화 가정 출신 장병으로만 국한됐다”는 것이다.
◆채식, 할랄, 코셔 인증 전투식량 갖춘 미군
해외에서도 군 내 다문화를 정착시키고자 노력한 사례도 많다. 다인종 국가인 미국은 국방부 산하에 ‘인종관계연구소(DRRI)’에서 군 내에 기회균등 프로그램(EOP)을 도입하는 등 인종·피부색·출신 국적에 따른 차별과 갈등을 꾸준히 줄이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일찍부터 채식주의와 특정 종교를 위한 급식을 마련했다. 전투식량 역시 24종류로 채식주의자는 물론 무슬림용, 유대교용 등 소수자를 위한 전투식량(MRE)을 갖추고 있다.
또한 부대가 임무를 수행하게 되는 지역의 인종과 언어문화를 고려해 그 지역에 친화적인 인원을 부대 지휘관으로 보직시키는 ‘루니 룰’이라는 제도를 2016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중동 등 특정 지역에 부대를 전개해 원정 임무를 수행하는 미군의 특성상 중동인, 아랍어, 무슬림 또는 이슬람계 군인이 임무 수행에 적합하며 현지 친화의 효과도 좋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이스라엘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곳곳에서 이주해 온 유대인들이 건국한 나라인 만큼 이스라엘군 지휘관을 대상으로 다문화 이해 교육을 확대 및 강화해 상급자로부터의 차별을 방지하고 있다. 또한 다문화 장병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군과 사회에 필요한 인재로 육성하기 위해 ‘다문화 장병 통합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군 장병을 대상으로는 문화, 종교 생활, 애도 관습 등에 대해 폭넓은 선택권을 부여함으로써 군 생활 중 문화 또는 종교로 인한 어려움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구현모 기자 lil@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