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쟁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전쟁이다. 미군의 실패 요인 중 하나로 군 장교단 내 경력주의(careerism) 문화가 지적된다. 경력주의란 장교들이 진급을 군 복무의 주된 목표로 삼고, 이를 위한 경력 관리에 몰두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경력주의에 치우친 일부 장교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임무를 완수하며 조직에 기여하기보다는 진급에 유리한 보직을 맡아 외형적인 성과를 달성하는 데 힘을 쏟는다.
경력주의의 대두는 냉전 시대의 전쟁 양상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핵전쟁의 위협 속에서 전면전의 수행이 아닌 전쟁 억제와 관리가 중요해졌고, 이를 위해 전쟁을 정치적으로 제한하며 군에 대한 문민 통제가 확립되었다. 이 과정에서 군 조직은 점차 관료주의적 체계로 변모했고, 장교들에게는 작전과 전투보다는 조직 운영과 자원 관리 역량이 강조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러한 관료주의와 경력주의는 베트남전쟁에서 여러 문제를 야기했다. ‘헬리콥터 지휘’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고급 지휘관들은 예하 부대를 엄격히 통제하려 전투 현장에 과도하게 개입하기도 했다. 당시 미군 장교들은 주로 진급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6개월간 베트남 전방에서 임무를 수행했으며, 성과를 입증하기 위해 ‘시신 숫자’라는 정량적 전과를 과장하거나 허위 보고하는 경우도 있었다. 민간인과 베트콩을 구분하기 어려운 비정규전과 게릴라전의 특성 또한 이러한 문제를 심화시켰다. 물론 이러한 사례가 일부에 불과할 수 있지만, 군의 엄격한 계급 체계 내에서 경력주의적 성향을 지닌 지휘관이 있을 경우 부대 전체가 성과에만 집착하게 되는 한계가 존재했다.
비록 미군의 탐색격멸 중심의 군사작전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보고된 적 격멸 전과는 미군이 군사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인식을 가능하게 했고, 미국 국민은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1968년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이 벌인 뗏 공세에서 사이공 주재 미 대사관이 총격을 받는 등 미군이 불리한 상황에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텔레비전을 통해 보도되자, 이를 지켜본 미국 국민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군의 군사적 성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고, 정부와 군은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되었다.
군인은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이 요구되는 ‘전문직’이라는 새뮤얼 헌팅턴의 견해처럼, 전쟁에서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군인의 진정한 성과 지표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평시에는 이러한 전문성을 평가하기 어려워 경력주의가 강화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베트남전쟁의 경험을 통해 경력주의의 폐단을 인식한 미군은 이후 군 개혁을 통해 군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게 된다.
심호섭 육군사관학교 교수·군사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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