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가격을 낮춘 2025년형 모델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4년여 간 오른 차값에 등을 돌린 소비자들을 달래는 한편, 중국 브랜드의 저가 공세에 대한 대응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5일(현지시간) 스텔란티스에 따르면 이 회사는 2025년형 지프 ‘왜고니어’의 가격을 종전 모델보다 3000달러 내린 5만9945달러(8300만원, 미국 시장 기준)에 출시하기로 했다. 왜고니어는 배기량 3000CC급 8인승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다.
스텔란티스의 올해 3분기 매출은 330억 유로(약 49조50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7% 감소했다. 실적 공개 이전부터 스텔란티스 본사의 가격 정책에 대한 판매 업체들의 불만이 이어졌다. “신형 전기차가 몰려오는 상황에서 스텔란티스 판매상들은 재고 처리에 허덕이고 있다”(오토모티브뉴스)는 현지 언론 보도도 나왔다. 더그 오스터만 스텔란티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달 31일 실적 발표에서 “재고 차량 판매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2025년 낮은 가격대의 모델을 통해 판매를 끌어올릴 계획이다”고 말했다. 다만 스텔란티스 코리아 측은 “한국내 판매 제품에 대한 가격 인하 여부는 아직 결정된 게 없다”고 설명했다.
토요타, 미 시장 현대차·기아와 격차 역대 최소
미 자동차 정보사이트 캘리블루북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직전인 2020년 1월 신차 평균 가격은 3만7600달러였는데, 올해 9월엔 4만8400달러로 4년새 1만 달러 이상 올랐다. 연 평균 7%씩 오른 셈이다. 고금리도 수요 감소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실제 미국 내 3분기 자동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2.6% 줄어든 약 390만대로 집계됐다.
이에 토요타도 2025년형 ‘그랜드 하이랜더’의 가격을 전년 모델보다 2000달러 낮췄 출시했다. 신형 그랜드 하이랜더의 최저가는 4만2310달러(약 5830만원)다. 토요타의 3분기 미국 판매량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8% 감소한 54만2876대였다. 특히 10월 판매량은 15만9370대로 현대차·기아(14만7010대)와의 격차가 최소 수준으로 줄었다.
이밖에 포드는 지난 4월 전기차 ‘F-150 라이트닝’의 가격을 최대 5500달러 인하했다. 테슬라도 비슷한 시기 각 모델별로 2000~4000달러씩 가격을 내렸다.
가격 인하 경쟁을 부추기는 또 다른 요인은 중국차의 공습이다. 미국 정부는 중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100%로 올리며 대응하고 있지만, 비야디(BYD) 등 중국 업체들은 멕시코·브라질 등에 공장을 짓거나 있던 공장을 인수하는 등 우회로를 찾아 북미 시장을 노리고 있다. BYD의 보급형 전기차 ‘시걸’의 가격은 약 1300만원 정도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일 보도에서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미국 뒷마당으로 여겨지던 남미에 앞다퉈 진출해 세계 시장을 공략하려 한다”라고 평가했다.
중국 업체는 한국 시장도 노크하고 있다. BYD는 연내에 한국 매장 개점을 목표로, 현재 딜러사 선점을 위한 막판 작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기아가 2025년형 K5를 역대 K5 최저 가격인 2766만원으로 출시한 것을 두고, 일각에선 BYD의 진출을 의식한 가격 인하로 해석하기도 한다. 종전 K5의 최저가는 2784만원이었다.
한편 중국 정부는 ‘자국 전기차에 대한 유럽연합(EU)의 관세율(최대 45.3%) 확정안이 부당하다’는 내용의 추가 제소 의견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최근 제출했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 4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무역 구제 조치의 남용이자 무역보호주의”라며 “EU가 자기 잘못을 직시하고 위법한 행태를 즉시 시정해 경제·무역 협력의 대국(大局, 큰 구도)을 함께 수호하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