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미 제주대학교 실버케어복지학과 교수/논설위원

틱낫한 스님은 “종이 한 장에 온 우주가 들어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종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무를 베는 사람, 종이를 가공하는 사람, 그들이 일하고 살아가기 위한 수많은 자원이 필요합니다. 종이 한 장조차 수많은 이들의 노력과 자원을 통해 만들어지듯, 우리 삶 역시 타인의 보이는 도움과 보이지 않는 에너지 위에서 가능해졌습니다.
사회복지학은 이러한 상호의존성과 관계성 속에서 인간의 삶을 이해하며, 받은 도움을 사회적으로 환원하는 윤리적 책임을 강조합니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사회의 수많은 자원과 관계망이 작동해왔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 우리는 그 빚을 갚아야 할 때임을 알게 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봉사’와 ‘나눔’, ‘갚음’이 시작됩니다. 봉사는 단지 도움을 주는 행위가 아니라 관계를 맺는 실천이며, 그 중심에는 ‘소통’이 있습니다. 특히 사회복지 실천에서 소통은 대상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출발하며, 이는 곧 경청의 태도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하는 데 집중하지만, 진정한 관계 형성과 신뢰는 잘 듣는 데서 비롯됩니다. 잘 듣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중요합니다. 첫째는 듣는 태도입니다. 몸을 상대방 쪽으로 기울이고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이고 추임새를 넣어주는 등의 반응은 상대에게 ‘당신의 말을 집중하고 있다’라는 신호를 줍니다. 이는 말하는 이의 마음을 열게 하는 출발점입니다.
둘째는 듣는 방법입니다. 단순히 귀로 말의 내용을 듣는 것을 넘어, 마음으로 억양과 감정을 느끼고 눈으로 표정과 태도를 읽는 전인적인 듣기가 필요합니다. 이는 한자 ‘聽’(들을 청)에 담긴 의미와도 연결됩니다. 귀와 눈, 마음을 모두 모아 온전히 듣는 것이야말로 사회복지 실천가에게 요구되는 기본 소양입니다.
셋째는 듣는 수준입니다. 무시, 듣는 척, 골라서 듣기, 의도적 경청, 공감적 경청(傾聽)의 다섯 단계 가운데, 사회복지 현장에서 필요한 것은 마지막 단계인 공감적 경청입니다. 이는 판단이나 충고가 아니라 상대방 입장에서 아픔과 감정을 함께 느끼고 수용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예컨대 “친구랑 싸웠어. 내가 잘못한 것 같아”라고 말하는 자녀에게 “왜 싸웠니?”라고 묻기 보다 “마음이 많이 힘들었겠구나”라고 응답하는 것이 공감적 경청입니다.
사회복지는 구조와 제도를 다루는 동시에, 개별적인 삶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학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수많은 관계망과 돌봄의 연결 위에 서 있으며, 나는 단독자가 아닌 관계적 존재로서 형성되어 왔습니다. 그렇기에 사회복지학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실천으로써 ‘듣는 태도’를 중시합니다. 이렇듯 잘 듣기 위해서는 말하는 사람 쪽으로 몸은 숙이고 눈을 마주치면서, 가끔 고개를 끄덕거리고 적절한 취임새를 넣는 듣는 태도가 기본으로 녹아있어야 하며, 내 귀와 눈과 마음을 하나로 집중하해 마치 내가 말하는 사람과 하나가 되어 듣는 것이다. 앎과 실천은 다릅니다. 알았다면 중요한 것은 실천입니다.
지금의 나는 타인의 배려와 돌봄 덕분에 존재합니다. 종이 한 장에 온 우주가 들어 있듯이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에너지 덕분입니다.
그 은혜를 사회에 환원하는 가장 첫걸음은 한 사람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일입니다. 우리는 지금 받은 것을 갚아야 할 때입니다. 지금-여기서 내 앞에 있는 이를 위해 온전히 듣기를 실천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