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대 해법 과학으로 푼다, 남아공 월드컵 주치의의 비책

2025-12-10

한국 축구는 내년 6월 11일 막을 올리는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공동 개최국인 멕시코와 같은 A조에 묶이면서 ‘고지대’라는 변수에 직면했다. 한국이 조별리그 1~2차전을 치르는 멕시코 과달라하라는 해발 1571m 고지다. 고지대는 산소가 부족해 선수들의 체력이 쉽게 떨어지고, 기압이 낮아 평소와 다른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한국은 고지대였던 2010 남아공 월드컵을 현명하게 극복한 경험이 있다. 당시 축구대표팀 주치의로 16강 진출에 힘을 보탰던 송준섭 박사(55·강남제이에스병원장)를 통해 고지대가 왜 힘든지, 그리고 그 해법이 무엇인지 풀어봤다.

■고지대 적응의 지름길, 더 높은 산을 올라라

스포츠에서 고지대 환경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것은 1968년 멕시코 올림픽이었다. 당시 장거리 종목의 입상자 대부분이 고지대 국가 출신의 선수들이었는데 주 경기장이 해발 2286m라는 사실이 주목을 받았다. 이 때부터 각국은 고지대 환경에서 인간 능력이 어떻게 변하는지 연구를 시작했고, 고지대 적응을 넘어 극복할 수 있는 방법도 하나 둘 찾아냈다.

고지대의 가장 큰 고민은 산소다. 인체에 필요한 산소량은 똑같은데 고지대는 공기 밀도가 낮아 대기 중의 산소 농도가 부족해 쉽게 지친다.

스포츠 과학자들은 두 가지 길을 찾았다. 먼저 선수들이 뛰어야 하는 고지대보다 300~700m 더 높은 산에 적응하면 경기가 열릴 때 산소 부족에 대한 스트레스를 덜 느낄 뿐만 아니라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가 증가해 저지대처럼 뛸 수 있는 효과가 있었다. 예컨대 한국이 과달라하라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보다 고도가 높은 곳에서 2주 이상의 적응 기간을 보내면 된다.

실제로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56)은 조 추첨이 끝난 뒤 해발 2160m인 멕시코 푸에블라를 방문해 베이스캠프 후보지를 점검했다. 해당 베이스캠프에는 한국과 함께 A조에 편성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비롯해 콜롬비아와 우즈베키스탄 등도 접촉한 것으로 확인됐다. 개최국인 멕시코는 아예 멕시코시티 인근 해발 2600m의 고성능 훈련센터에서 월드컵을 준비하기로 했다.

고지대와 비슷한 환경을 만들면 적응을 더욱 쉽게 도울 수 있다. 송 박사는 남아공 월드컵 당시 영국 리버풀 존 무어 칼리지 운동생리학과 교수의 도움을 받아 파주트레이닝센터에 선수들이 고지대에 적응할 수 있는 저산소실을 마련했다. 산소량을 단계별로 조절할 수 있는 이 장치는 원하는 고도에 해당하는 양의 산소와 질소가 방을 채운다. 이 과정에서 선수들이 호흡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 대한 각종 데이터를 면밀히 체크했고, 보강책을 제시해 고지대에서 마음껏 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당시를 떠올린 송 박사는 “고지대 환경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 포지션이 따로 있다는 걸 깨달은 시기”라면서 “미드필더는 반복 전력질주 횟수가 줄어들고, 윙어는 전력질주하는 스프린트에 제한이 걸렸다. 두 포지션은 고지대 적응이 정말 필수였다”고 말했다.

■고지대 적응한 태극전사, 하산하면 더 강해진다

한국이 고지대 적응에 공을 들이는 것은 단순히 조별리그의 수월한 통과만 목적은 아니다. 고지대에 적응한 선수들은 저지대로 내려가면 더 강해진다.

흔히 산 사나이들의 체력이 좋다고 말하는데 늘어난 적혈구가 거꾸로 저지대에서 체력을 끌어올리는 효과다. 사실 톱 레벨의 선수들 사이에서 기량은 한 끝 차이다. 상대보다 체력이 월등할 수 있다면 그 한 끝 차이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 감독의 마법과 같은 맥락이다.

히딩크 감독의 무릎을 수술하기도 했던 송 박사는 “대표팀이 조별리그 1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하면 멕시코시티에서 32강전을 치르지만, 2~3위로 통과하면 평지인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시애틀 혹은 휴스턴으로 간다. 고지대에서 적응한 선수들이 단기적으로 20% 안팎의 체력 향상을 보인다. 남아공 월드컵도 고지대인 요하네스버그에 익숙해진 선수들이 해안가의 더반에 내려오면서 힘을 발휘했다. 이번 월드컵도 같은 기대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하산도 그냥하는 것은 아니다. 신체가 적응할 수 있도록 특화된 식단과 영양 전략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송 박사는 “대한축구협회 의무분과위원회에선 고지대 적응 과정에 생기는 두통과 근육통, 부종 등에 대처하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다. 선수들에게 필요한 기술적인 부분은 피지컬 코치 등이 잘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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