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뇌에 속지 마세요

2025-01-16

행복해지고 싶다고 누구나 생각하지만 이렇게 어려운 일이 없습니다. 뇌 자체는 위험을 예측·탐지하는 데 최적화된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행복을 만끽하라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착같이, 의도적으로, 행복감을 느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이야기의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모든 문화와 역사를 통틀어 인류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기본 감정 여섯 가지는 기쁨·슬픔·분노·놀람·혐오, 그리고 공포. 긍정적인 감정이라고는 기쁨 한 가지뿐입니다. 부정적 감정은 그 강도 자체도 매우 높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웬만해선 기쁘기 어려운데, 엔간한 일로도 쉽게 슬퍼지고 손쉽게 자기 혐오할 수 있지요. 생존을 위해 위협적이고 부정적인 일을 늘 염두에 두는 뇌에게, 즐겁고 긍정적인 일들은 우선순위가 아닙니다. 30년 전 사회신경과학의 창시자인 심리학자 존 카치오포가 ‘부정적 정보에 자꾸만 큰 비중을 두는 뇌의 패턴’을 뇌파 연구로 밝힌 이래로 수많은 연구가 이를 반복 입증했습니다.

생존 위해 부정적 감정 패턴 발달

누구나 저마다의 우울로 고통

순간 음미, 재미 찾는 버릇 들여야

그러니 지금의 뇌에 속지 마세요. 그 친구는 700만년 내내 긴장하고, 경계하고, 생존에 가장 진심인 기관이었습니다. 지금 당장 척박하더라도, 더 진화되고 세련된 방식으로 내가 길을 새로 내면 됩니다. 오늘 시도해 볼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음미하기(savoring), 그리고 즐거움을 찾기.

순간을 음미하세요. 처음에는 어려울 거예요. 습관을 만들어주세요. 뭔가를 ‘단지 경험하는 것’과 ‘그 의미를 이해하고 감사하는 것’은 뇌의 각기 다른 영역이 처리하는 일인데, 이 별개의 작업을 계속해서 함께 해내려 할 때 뇌 안에서는 새로운 연결이 만들어집니다. 본래 따로 움직여왔던 서로 다른 뉴런들은 저도 모르게 패키지로 묶여 팀 작업을 시작합니다. ‘어떤 일을 경험한다+음미하고 감사를 느낀다’ 팀입니다.

불 곁이 따스했다면, 음미합니다. 밥의 온기가 기분 좋았다면, 날씨가 청명하다면, 놓치지 않고 음미합니다. 누군가의 덕분으로 무탈한 하루를 보냈다면, 음미하고 감사해 합니다. 그렇게 하루 몇 분만이라도 일상 중의 명상에 진입하고, 감사하고, 마음을 챙기며 내공을 쌓습니다.

그까짓 음미, 정신승리 아니냐 치부할 수 있겠지만, 뇌내 신경전달물질의 입장은 명확합니다. 지난달 네이처에 게재된 연구처럼, 유쾌한 일을 경험할 때 우리 뇌에서는 ‘미래를 기대하게 하고 모험하게 하는 도파민’이 경쟁하듯 나옵니다. 내가 감사해 하고 기뻐하는 순간순간 이러한 신경전달물질의 농도가 점차 차오른다고 잠시 상상해 보면, 그 정도 음미, 안 할 이유가 없습니다.

두 번째로, 내 삶의 재미와 즐거움을 어떻게든 찾아내세요. 인지행동치료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임상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1913~ 2007)는, 인간의 가장 비합리한 생각 중 하나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행복이 찾아온다는 믿음’을 꼽습니다. 아무 콘텐트도 업로드 하지 않아도 구독자 수가 늘어나는 유튜브 채널, 아무 공부도 하지 않아도 유창해지는 외국어 실력, 아무 음식을 만들지 않아도 손님이 밀어닥치는 식당만큼이나 허황된 것입니다.

나의 행복은 내가 작정을 하고 발견해야 합니다. 좋아하는 음악이나 누군가의 목소리에서, 시간을 들이는 취미나 신체 활동에서, 곁에 선 아이의 볼록한 볼 윤곽에서, ‘나 이런 거 좋아했네’ 하며 나 자신을 발견하세요. 그 모든 것들이 우리 삶의 허무와 절망을 이겨내는 작고 귀여운 장치들입니다.

그렇게까지 살아야 하느냐, 물으신다면, 네. 그것이 인간의 삶이니까요. 질병과 재난, 가난, 고립에 불안해하고, 운이 나쁘면 어느 순간 칼날 아래로 추락하는, 한계가 있는 인간이니까요. 삶이란 참 난이도가 높아, 순간순간의 재미를 찾으며 살지 않으면 어느 순간 우울과 불안의 비합리적이고 왜곡된 렌즈로 자기 삶을 들여다보다가 마침내 견디기 힘들어지는 것이니까요. 가만히 놔두면, 뇌는 부정적 감정과 생각의 물결에 몸을 싣고 무력감의 지옥에 다다릅니다. 그러니 뇌가 가자는 대로 가만 내버려 두지 마세요.

저 역시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저 말고도 수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우울과 불안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음을 가만히 떠올립니다. 때로는 이름 모르는 이들과 한없는 슬픔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다들 인간이니까, 누구든 삶이 참 힘든 거야.’ 그리고는 반추의 문을 닫고는 팔에 닿은 이불의 감촉을 음미하고 늘 들려왔던 가족의 숨소리에서 새삼스러운 기쁨을 발견합니다. 그렇게 다시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이 순간을 삽니다.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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