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산업의 절대 강자 엔비디아가 이번엔 ‘로봇 두뇌’를 겨냥했다. 챗GPT와 같은 자체 생성 AI 모델 없이도 AI 생태계를 장악한 엔비디아가 로보틱스 분야에서도 ‘로봇 없는 로봇업계 1위’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5일(현지시간) 엔비디아는 최신 로봇용 수퍼컴퓨터 ‘젯슨AGX 토르’를 출시했다. 블랙웰 그래픽처리장치(GPU) 기반의 ‘젯슨 T5000’ 칩과 128GB 저전력 D램, 1TB 용량의 저장 장치 등을 모듈 형태로 결합했다. 이전 세대보다 연산 성능은 7.5배, 전력 효율은 3.5배 더 향상됐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젯슨 칩을, 로봇 두뇌(robot brain)로 소개했다. 이날 엔비디아는 황 CEO가 휴머노이드 로봇에게 “Enjoy your new brain(새로운 두뇌를 즐겨라)” 문구를 적은 편지와 함께 젯슨AGX 토르 수퍼컴퓨터를 선물로 주는 영상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선물을 받고 편지 내용을 읽은 로봇이 춤을 추며 즐거워하는 장면이 담겼다.
황 CEO는 “젯슨AGX 토르는 뛰어난 성능과 에너지 효율, 그리고 다수의 생성 AI 모델을 동시에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궁극의 수퍼컴퓨터”라며 “앞으로 피지컬 AI와 범용 로보틱스 시대를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피지컬 AI는 소프트웨어 형식의 AI가 로봇 같은 물리적 기계에 탑재돼 인간과 상호작용하며 움직이는 기술을 의미한다.

엔비디아의 로봇용 AI칩은 피지컬 AI를 구현하는 데 필요한 핵심 부품이다. 카메라와 센서로 수집한 물리 현실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AI가 실시간으로 판단하고 로봇의 움직임을 제어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배터리로 구동되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전력 효율도 매우 중요한 변수다.
엔비디아는 이번 수퍼컴퓨터가 휴머노이드 로봇은 물론 수술보조 로봇, 스마트트랙터, 산업용 로봇 팔, 시각 AI 에이전트 등 다양한 로봇 분야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로봇 개발 소프트웨어 도구에 최적화된 개발자용 키트(3499달러)도 출시했다.
업계에선 엔비디아의 로봇 사업이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1분기(2~4월) 엔비디아의 전장·로보틱스 부문 매출은 5억7000만 달러로 전체 매출(441억 달러)의 1.3%에 불과하지만, 전년 동기 대비 72%나 급증했다. 이미 황 CEO는 “AI 다음으로 로보틱스가 가장 큰 성장 시장이 될 수 있다”며 시장 공략을 예고했다. 골드만삭스는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올해 15억달러(약 2조원)에서 2035년 380억 달러(약 53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AI 칩과 소프트웨어를 결합하는 엔비디아의 생태계 장악 방식이 로보틱스에서도 통할지 주목된다. 현재 챗GPT, 제미나이, 클로드, 그록 등 생성 AI 모델 대부분이 엔비디아의 AI 칩 위에서 구동되고 있다.

앞서 올해 1월 CES 2025에서 황 CEO는 엔비디아와 협업 중인 휴머노이드 14대를 세워 놓고 기조연설을 진행해 이목을 끌었다. 무대 위에 오른 휴머노이드 중에선 유리트리 등 중국 업체의 로봇이 6대로 가장 많았다.
중국은 로봇의 관절에 해당하는 엑추에이터를 비롯해 배터리와 라이더 센서 등 휴머노이드 부품에서 앞서가고 있지만,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 칩 분야에선 여전히 미국이 우위에 있다. 엔비디아는 수많은 업체들이 로봇을 경쟁적으로 출시하더라도 로봇용 AI칩과 이를 뒷받침하는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독점해 ‘로봇 중심 AI 인프라’를 장악하겠다는 구상이다.
디푸 탈라 엔비디아 로보틱스·엣지 AI 담당 부사장은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로봇이나 자동차를 직접 만들지는 않지만 인프라용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로 모든 산업이 가능해지도록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