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의 뒤편

2024-10-17

“무슨 일을 하세요?”라고 물어오면 대답을 고르기가 어려운 때가 있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문화 기획’을 한다고 할 수 있지만 ‘기획자’라는 게 어딘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에야 “지역에서 문화 기획하며 출판사 운영하고 있습니다.”라고 매끈하게 소개를 하지만 한때는 그랬다. 기획자라는 게 어딘가 사기꾼 같은 면모가 있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종이에 담긴 계획과 청사진을 실현해 내는 과정을 거치는데, 그건 때로 계획보다 월등히 좋을 수도 있고, 계획된 바에 미치진 못했으나 그 나름의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과정임은 분명하다. 과업을 맡긴 사람은 기획자를 전적으로 믿고 맡기기에 신뢰의 무게를 견디며 자신의 맡은 임무를 해내는 것이 기획자인데, 이런 업을 하다 보면 매끈한 전시나 행사장에 가서 뒷면을 상상하게 된다.

그곳은 우스갯소리로 “전시 기획의 정수는 막노동이다.”라고 하는 말의 현장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을 사람들을 위한 몇 가지 체크리스트가 있다.

-이른 아침에 집결하는가? Y

-목장갑에 익숙하고, 공구와 크레인을 능히 쓰는가? Y

-점심엔 국밥, 저녁 설치 완료 후에는 고기를 먹는가? Y

-현장이라고 부르는가? Y

-작업이 끝나면 어딘가 피가 나거나 멍이 들어있는가? Y

-공기를 마치기 위해 주야 없이 작업하는가? Y

-가족보다 화물차 기사님을 더 자주 만나는가? Y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노동력에 기대는가? Y

완벽하게 잘려 시공된 시트와 디자인과 작품 그리고 유려한 동선을 자랑하는 행사장의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있다. 이건 비단 하나의 공간을 넘어서 여러 사람의 손길이 닿아 완성되는 책이나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글은 글을 쓴 사람과 닮았다. 종이에 기계적으로 인쇄된 자간과 행간일 뿐이지만, 그 사람만이 해석할 수 있는 문장과 사용되는 단어와 조사의 흐름 안에서 글을 쓴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느 잡지에서 촬영한 인터뷰 사진에서 드러난 뼈가 도드라진 발이라던가, 자신이 대중 앞에 서는 게 서툴다며 유창한 강연 대신 인쇄해 온 글을 읽던 모습이라던가, 머리를 넘기는 습관 때문에 헤집어져 있던 머리카락이라던가. 그럴 때면 글자들을 만져본다. 어떤 입체감도 느껴지지 않는 종이 속에서 글을 쓰는 모습을 읽어본다.

영화를 볼 때도 카메라에 담긴 화면을 바라보면서 카메라 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로케이션의 순간부터 촬영에 들어갔을 때의 모습 그리고 편집실에서의 뒷모습 같은 것. 영화를 보면서 촬영장에서 무전기를 통해 이야기하고 모니터 룸에서 스태프들에게 둘러싸여 촬영본을 확인하는 감독과 배우의 모습을 떠올려보는 건 영화를 이해하거나 비평하는 데 도움 되진 않지만, 영화가 살아있다는 느낌은 든다. 생동감 있는 손길과 호흡이 섞여 만들어낸 자식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여러 사람이 만들어 낸 행사나 전시 또는 작품을 보면 작고 큰 희로애락 속에서 헤엄치는 사람의 인생사에서 가장 매끈한 것만 모아 담아놓은 것 같다.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은 걸 위해 며칠, 몇 달을 전전긍긍하며 보기 좋은 만듦새로 담아내는 시간, 염원, 바람, 열정... 비물질적인 것이 물질적인 것에 담겨 전해지는 걸 상상해 보면서 결국 영원히 내가 사기꾼 같다는 기분을 떨쳐내지는 못하면서도 계속해서 ‘기획’을 하는 건 결국 어떤 아름다움의 이면에 매료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김나은 여성주의 문화 기획사·우만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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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기획 #출판사

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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